누가복음 23:39-43(참고 에스겔 18:1-4, 21-32 / 갈라디아서 2:15-21 /20260322)
들어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 다섯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에스겔서 본문에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던 이상한 속담 하나가 등장합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 (겔 18:2) 이 말은 "내가 지금 고생하는 건 우리 부모님 때문이고, 조상들 죄 때문이지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남 탓이자 핑계입니다. 포로 생활이라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회개하기보다 환경과 운명을 탓하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를 잘 못 만나서", "시대가 이래서",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내 신앙과 삶이 이 모양이라고 핑계 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핑계의 성벽을 허무는 하나님의 질문 (에스겔 18장)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겔 18:3) 하나님은 연대 책임이나 조상의 저주라는 핑계 뒤에 숨은 우리를 끄집어내어 일대일로 마주하십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겔 18:4) 이 말씀은 무서운 심판의 선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구원의 기회입니다. 환경이 어떠하든, 과거가 어떠하든 '지금 이 순간 내가 돌이키면' 살 수 있다는 소망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핑계 대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간절히 원하십니다.
율법이라는 핑계, 은혜라는 실제 (갈라디아서 2장)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또 다른 종류의 핑계를 다룹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인간의 교만입니다. "나는 이만큼 지켰으니 괜찮다" 혹은 "나는 율법을 못 지켜서 안 된다"는 식의 계산적인 태도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선언합니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우리는 우리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순절은 나의 의로움을 자랑하거나 나의 부족함을 탓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 핑계와 노력을 내려놓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핑계를 멈춘 자의 낙원 (누가복음 23장)
이 두 메시지가 가장 극적으로 만나는 현장이 바로 골고다 십자가 위입니다. 거기에는 두 부류의 인간상이 있습니다. 한 행악자는 예수님께 "네가 그리스도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소리칩니다. 죽는 순간까지 자기 죄를 보기보다 환경을 탓하고 예수님을 도구로 이용하려 합니다. 전형적인 '핑계의 삶'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의 강도는 달랐습니다. 그는 곁에 있는 자를 꾸짖으며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눅 23:41) 그는 환경 탓을 멈추고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대면했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간구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의 응답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핑계를 멈추고 회개로 나아간 자에게 주어진 것은 심판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동행'이었습니다.
인생이 행한 죄의 결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심판과 멸망의 자리에 두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낙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바울은 죄인인 인간이 의롭게 되는 길-행복으로 가는 길, 낙원에 이르는 길-은 하나님의 율법에 비추어 볼 때, 전혀 불가능해 보인다 말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율법을 완전히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의롭게 되는 것의 주체가 우리가 아님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피를 흘리심으로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고 죄로 인하여 인간이 받아야 할 형벌을 면제해 주십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롬 3:30) 행악자중 반대편에 있던 사람도 이것을 인식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형벌 가운데 죽어가는 중에 이렇게 예수님을 평가합니다.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41절) 그리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42절)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낙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아 낙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19-20)
"성도 여러분, 요즘 TV 프로그램 중 '이혼숙려 캠프'를 보십시오. 모두가 상대방이 변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남 탓(신 포도 속담)'을 멈추라고 합니다. 바울은 '나의 의'를 포기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강도는 오직 '나의 죄'를 고백하며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행복의 시작은 상대의 변화가 아니라, 주님 앞에서의 나의 정직한 회개입니다."
나가는 말 : 핑계를 넘어 회개의 은총으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사순절 다섯째 주간, 우리 입술에서 핑계를 지워봅시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어서 내 이가 시다"는 속담을 버립시다. 내 신앙이 자라지 않는 이유, 내 삶이 무너진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맙시다. 대신 십자가 위의 강도처럼 고백합시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받아야 할 보응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주님, 나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내가 핑계를 멈추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약속의 말씀이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삶을 낙원으로 변화시키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