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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증인으로

꿈지기의사랑 2026. 3. 15. 09:46

요한복음 19:1-16 (이사야 59:1-3, 9-20 / 디모데전서 1:12-17)

 

들어가는 말 : "사랑의 증인, 그 거룩한 부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두 가지 의미가 겹치는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사순절 네 번째 주일이자, 그 주님의 사랑에 매료되어 자신의 생명까지 기꺼이 내어드렸던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하는 순교자 주일입니다. '순교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르투스(Martus)'인데, 이 단어의 본래 뜻은 '죽는 사람'이 아니라 '증인(Witness)'입니다. , 순교자는 죽음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다 보니 죽음조차 두렵지 않게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어두워진다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본문 59장에서 그 어둠의 실체를 이렇게 고발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59:1-2). 우리가 빛을 잃은 이유는 하나님이 떠나셔서가 아니라, 우리가 죄의 담을 쌓고 스스로 어둠 속에 숨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둠 속에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세 본문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빌라도의 뜰, 사랑이 조롱받는 자리 (요한복음 19:1-16)

 

   오늘 복음서 본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을 보여줍니다. 바로 '진리''거짓'에게 재판받는 장면입니다.

   1) 빌라도의 타협: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유대 군중들에게 예수님을 놓아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군중들은 외칩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이 한마디에 빌라도는 무너집니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 자신의 안락한 자리, 세상의 평판이 진리보다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는 손을 씻으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지만, 결국 공의를 짓밟고 예수님을 넘겨주었습니다.

   2) 가시관을 쓰신 사랑: 빌라도의 군인들은 예수님께 자줏빛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웠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때리며 조롱합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빌라도는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 세우며 외칩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Ecce Homo)!" 성도 여러분, 이 장면을 보십시오. 이 분이 누구십니까?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고 조롱당하고 계십니다. 왜 주님은 침묵하셨을까요?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불러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었음에도 왜 그 수치를 견디셨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 사랑 때문입니다. 이사야 5916절 말씀처럼, "중재자가 없음을 보시고 자기 팔로 친히 구원을 베풀기 위해" 스스로 그 고통의 자리에 머무신 것입니다. 주님은 빌라도의 권력보다, 군중의 함성보다 더 큰 '사랑'의 증인이 되어 십자가로 걸어가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순교자들은 바로 이 '가시관 쓰신 주님'의 모습에 마음이 녹아내린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너도 빌라도처럼 타협하라"고 유혹할 때, 그들은 피 흘리는 주님의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이 나를 이토록 사랑하셨는데, 내가 어찌 주님을 모른다 하겠습니까?“

 

바울의 고백, 긍휼을 입은 증인 (디모데전서 1:12-17)

 

   이제 시선을 사도 바울에게로 돌려봅시다. 순교자 주일에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 중 하나인 바울은, 사실 과거에 '순교자를 죽이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그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겉옷을 맡아주며 그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자신을 향해 내린 진단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자각이 바울로 하여금 순교의 마음, 순교자의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바울이 실력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바울이 도덕적으로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장차 주를 믿어 영생 얻을 자들에게 "이렇게 악한 자도 변화될 수 있다"는 사랑의 본을 보이시기 위해 그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평생을 매 맞고, 굶주리고, 결국 로마에서 목이 잘리는 순교의 제물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나 같은 괴수에게도 베풀어 주신 그 말도 안 되는 긍휼"이 그를 강권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교는 '나의 강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긍휼'에 감격할 때 가능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그 사랑이 너무 고마워서, 나도 그 사랑의 증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 고백이 순교자의 심장입니다.

 

이 시대에 "사랑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 (이사야 59:9-20)

 

   오늘날 우리는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가 '사랑의 증인'으로, 즉 순교적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초대 교회의 위대한 교부였던 터툴리안은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며 역사에 남을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이 말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세상의 논리는 죽이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면 선동이 가라앉을 줄 알았고, 로마의 황제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사자 굴에 던지면 교회가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이사야 5919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순교자의 피가 땅에 떨어질 때,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심겨짐이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12:24), 순교자들이 흘린 사랑의 피는 복음의 거름이 되어 잠자던 영혼들을 깨웠습니다. 로마의 형장 근처에서 그들의 당당한 죽음과 끝없는 용서를 본 간수들과 구경꾼들이 오히려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예배드릴 수 있는 이유도 누군가가 흘린 '사랑의 피'라는 씨앗이 우리 마음 밭에 심겨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스데반의 죽음을 목격하며 그 영적 충격 속에 변화되었듯이, 우리 또한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을 먹고 자란 나무들입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이제 어떤 씨앗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겠느냐?" 순교는 거창한 죽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터툴리안이 말한 그 씨앗이 된다는 것은, 내가 죽어 남을 살리는 '작은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이사야 5914절은 오늘날 우리 사회와 비슷합니다. "정의가 뒤로 물러가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이런 세상 속에서 사랑의 증인이 되는 법은 세 가지입니다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빌라도처럼 나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가시관 쓰신 주님이 우리 곁에 오셨듯, 고난받는 이웃 곁에 머무는 것입니다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바울이 받은 그 용서를 나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나의 자존심을 죽이고, 나의 욕심을 죽이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드려야 할 '살아있는 순교'의 제사입니다.

 

나가는 말

 

   사순절 네 번째 주일, 가시관을 쓰신 주님은 우리를 사랑의 증인으로 부르십니다. 빌라도처럼 세상을 두려워하며 손을 씻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바울처럼 주님의 긍휼에 붙들려, 터툴리안이 말한 그 '거룩한 씨앗'이 되기를 결단하십시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고난과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가장 강력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약속처럼, 주님은 죄과를 떠나 주께로 돌아오는 우리와 함께 영원한 언약을 맺으실 것입니다(59:21).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 기꺼이 썩어지는 밀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과 땀, 그리고 사랑의 수고가 훗날 풍성한 생명의 열매로 맺힐 것을 믿습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 1:17)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가슴에 품고,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증인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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