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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꿈지기의사랑 2024. 11. 3. 12:14

마태복음 10:34-39(참고 사무엘하 28:13-17, 야고보서 4:1-10)

 

들어가는 말

 

   오늘은 창조절열번째주일입니다. 지난 주에는 야외예배를 나갔었습니다. 자연의 풍경들을 보면서 쉼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걸음이 시원치 않은 장로님 권사님들을 보자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분들의 수많은 헌신과 눈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들에게 들려졌던 말씀의 십자가를 지고 쉴틈없이 달려오다보니 세월이 흐르고 걸음을 걷는 것조차 힘겨운 노년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말씀 속에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사랑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목숨을 하나님을 위해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37-38절에서 밝히신 것처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것이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께 합당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때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잃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가족을 사랑하지 말고 무조건 배척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선 순위를 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족보다도 하나님을(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다른 어떤 사랑보다 앞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족마저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로 막아서는 안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달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태 10:34-37) 그것은 가족만이 아니라 자신이 될 지라도 자신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무엘하 23장 말씀은 다윗의 마지막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신 사실을 노래하는 장면과 그 뒤를 이어 다윗이 나라를 굳건히 통치해 갈 수 있도록 생명 바쳐 자신을 도와준 3인의 용사들을 회고하는 장면입니다.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삼하 23:13-15)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고향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진영에서 베들레헴까지는 20km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이 말은 고향에 대한 향수이고 블레셋으로부터 베들레헴을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의 세 용사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삼하 23:16a)”습니다.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물을 길어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드립니다. 왜냐하면 세 명의 용사가 가져온 물은 물이 아니라, 그들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삼하 23:16b-17) 다윗은 이 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세 용사의 생명인 피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건 충성스러운 세 용사의 마음을 알았던 다윗의 마지막 날 고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에는 우리의 목숨까지도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10:39).”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본회퍼는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신 것은 나와 함께 죽자고 초청하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정욕과 욕심을 내려 놓는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는 공동체에 타툼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 정욕과 욕심 때문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타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4:1) 즉 주님을 따라 간다는 것은 나의 욕심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이 우선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가진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게 될 때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육신적인 생명을 가지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인간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일들에 우리의 인생을 소비하고 그것들에만 집중하다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이것은 비단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물질에 집중하다가 물질은 얻었지만 가정을 잃는 것과 같은 일들입니다.

   평생동안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은 돈이나 부는 마음껏 손에 넣을 수 있지만 일생에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돈보다 시간이 훨씬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돈을 쓸 때에는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약속시간에 늦거나 쓸데없는 일로 남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습니다. 시간과 돈 모두가 중요하지만 시간이 더욱 소중합니다. 시간으로 돈은 살 수 있찌만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없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삶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생명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주의 일에 힘쓰십시오. 특별히 주님과 만나고 함께 하는 일에 힘쓰십시오. 예배하는 일, 기도하는 일, 말씀을 읽으는 일을 통해서 주님과 교제하십시오. 세상적인 것을 버리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16:25) 17세기의 영향력 있던 목회자 사무엘 러더포드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내가 져 본 짐 중에서 가장 달콤한 짐이다. 그것은 마치 새에 달린 날개와 같고 배에 달려 있는 돛과 같아서 나를 내 목적지에 이르게 한다" 무거운 새의 날개가 새로 하여금 날게 하고, 거추장스러운 돛이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재산도 버리고 기쁨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심지어 생명도 버려야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아는 눈이 뜨여 주님과 사랑에 빠지니 더 이상 재산이나 성공에 매이지 않으며 생명도 아깝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복되고 사랑스러운 주님을 따라가려니 자기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이 나의 삶보다 우선되는 삶,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외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4:7-10) 하나님 사랑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말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고,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면 주께서 우리를 높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웃사랑의 힘든 길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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