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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서로 사랑합시다

꿈지기의사랑 2024. 10. 16. 17:28

베드로전서 4:1-11(참고 창세기 9:1-7, 마태복음 25:14-30/ 20241013)

 

들어가는 말

 

   요즘 날씨가 쌀쌀해 져가고 있습니다. 날이 쌀쌀해 져가듯 세상도 싸늘해져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러시아와-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여전히 그칠줄을 모르고, 중동의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도 핵무기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반도의 정세도 전쟁에 가장 가까운 시절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칠 줄 모르고 점점 냉랭해져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칠줄 모르고 피를 향해 나아가는 짐승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시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위로와 평화가 여러분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이 사라져가는 세상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들에게 복을 주시며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 남자와 여자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리를 받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대신하여 정복하고 다스린다면 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려 평화로우며 화목한 세계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행동을 하였고, 에덴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안정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첫 후손은 형제를 살해하였고, 그 동생의 생명이 끊어지고 피는 땅을 적셨습니다. 가엾은 피가 땅을 물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들은 대로 땅과 거기에 있는 것들을 정복하고 다스린 결과 자신들의 생명조차 보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남자와 여자에게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종속시키고 지배하라고 하셨으나, 노아에게는 살아있는 동물들이 사람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두 번에 걸쳐 명령하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시는 말씀 안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의 유기적인 평화가 사람에게 달려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지난 7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몇 번의 휴전제의가 오갔으나 그 때마다 이스라엘은 전쟁터를 넓혀갑니다. 전쟁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를 넘어 레바논과 이란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멸절시킬 때까지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는 선언도 들립니다. 하마스는 2023년 이스라엘의 초막절기에 군사시설을 공격해서 이스라엘인 약 1300명 정도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1200명 정도의 인질을 잡았다가 아직 약 20명 정도가 풀려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전쟁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군인과 민간인은 42,500명가량 되고, 부상자는 145,000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최근 며칠사이에는 미군이 공급한 초대용량 폭탄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병원시설을 폭격의 목표로 삼았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는 인류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가져다 사용합니다.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수집하고 쌓고 팔아 이득을 남깁니다. 이제 그 이득이 정당하지 않다고, 물자를 수집해서 쌓아놓고 이득을 올리기 위해 공급량을 조절하는 것이 불의하다고 지적할 수는 있지만 금지할 수는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2)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게 하셨지만 여전히 욕심과 정욕을 따르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길을 걷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외침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세상을 아름답게 가꿀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셨지만 그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살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3) 이러한 세상은 과거로 족하다 하셨는데, 우리의 삶은 여전히 그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 달란트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세 번째 종을 심하게 책망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이 달란트가 네 소유의 돈이었다면, 네가 그 이익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너는 최소한 이자라도 추구하지 않았겠느냐?”는 질책인 것입니다. 주인이 내가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도 않는 곳에서 모은 줄 알았더라면 마땅히 내 돈에 취리하는 자들에게 맡겨서 원금과 이자를 함께 받도록 했어야 했다.”(25:27)고 말한 것은 이해타산에 밝은 세 번째 종의 사악함을 지적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인이 볼 때 세 번째 종은 참으로 무익한 종입니다.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종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할 뿐, 하나님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악한 종입니다. 이러한 종은 하나님 나라에 해만 끼칠 뿐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소유에 집착하고, 지위에 붙들려 있으며, 자아에 얽매여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것과 자신의 것을 구별하며 자신의 지분을 생각합니다. 철저하고 치밀하게 계산합니다. 그가 살아가는 삶의 동기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입니다. 신앙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신앙을 갖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무언가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도 거부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우상의 본질이라고 할 때(“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32:23), 그는 철저하게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는 땅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체 가운데 빠져 여전히 심판받을 자로서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재능, 은사를 온전히 사용해야 함에도 그것을 외면하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은혜를 맡은 청지기(7-8)

 

   제사장으로서 교회가 갖추어야 할 마음은 무엇일까? 종말의 신앙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7) 하나님의 심판의 때, 종말의 시간이 가까이 와서 우리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아 고난을 겪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 모습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 일시적인 고난에 휘둘리지 말고 사리를 분별하고 정신을 차려서 세상에 속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깨어서 기도하는 삶이다. 그리스도의 육체의 고난을 통해서 죄를 그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낸 것처럼, 각오를 다지고 마음을 다잡아 정욕을 따르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 해야 한다. 그 길을 가기 위한 것이 기도이다. 이렇게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야 말로 사랑할 수 있다. 이러한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믿음의 형제들이 해야 할 일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웃을 존중하는 삶을 살았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고난의 시간을 함께 겪는 믿음의 형제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한 뜻을 품고 서로 '형제애'로서 사랑하며, 피차 하나님의 긍휼로 '불쌍히 여기고' 그런 긍휼로 서로를 대하여 '자신을 낮추어' 섬겨야 한다. 8절의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서로를 향해 실패하지 않는 사랑을 갖고'가 된다. '사랑을 지속적으로 계속하라'는 뜻이다. 세상에서 낯선 이방인 대접을 받고 비방과 차별, 모욕과 불이익을 당하는 같은 믿음의 형제들 사이에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것은 은혜로 유야무야 죄를 덮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회복은 죄의 고백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죄인을 피를 통해 죄를 용서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죄인을 품은 공동체가 그와 더불어 죄를 참회하며 회해하여 돌이키는 눈물과 수고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나가는 말 : 뜨겁게 사랑하십시오(구체적 사랑으로)

 

   예수님의 생명인 피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는 근거가 되었습니다회개하고 돌이켰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라’(9:6)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로 서로를 인식하고 전쟁을 그치고, 죄악으로 가득한 삶을 멈추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뜨겁게 서로를 사랑하는 세상, 그러한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함께 실천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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