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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을 돌리러 온다는 것

꿈지기의사랑 2024. 10. 12. 23:48

누가복음 17:11-19(참고 창세기 8:13-22, 골로새서 3:12-17 / 20241006)

 

들어가는 말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늘 건강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세계성만찬주일이면서 군선교주일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 우리의 선교주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 정해진 선교를 위한 시간들입니다. 며칠 전에 황등면 교회연합회에서 친목대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오랜 만에 자연의 경관과 그 경관들이 주는 쉼을 통해서 여유를 가지고 사진도 찍고하는 좋은 시간이 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어디서 뭘했지 하고 생각해 보니까 막상 뭘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행은 사진만 남는다는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를 경험한 것 같은데, 뭔가를 본 것 같은데 정작 뭘봤지 하면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한 가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것만 남았는데요.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0명의 나병환자

 

   예수님과 만난 열명의 나병환자들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즉 경계에 살았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곳에 나병환자 열 명이 있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는 격리해야 합니다. 레위기 13장에 따르면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45-46) 평소에는 일주일 정도 경리되지만 병이 계속되면 진영에서 함께 살지 못하고 가족들과 철저하게 격리되는 삶을 살게되는 상황을 겪어야만 했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면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합니다.(45) 나병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피부병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유 받지 못할 것이며"28:27)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서 그들은 사마리아에도, 갈리리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신세인 것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배격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편에도, 혼혈정책에 의해서 순수한 혈통을 잃어버려 그것을 죄인 취급하여 사람취급받지 못하던 사마리아인들에게 조차도 속하지 못하는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결국 죄인인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이바로이들 경계인 나병환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접경지역에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함께 모여 살며 서로 위로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들은 레위기의 규정대로 다른 이들을 부정하게 할 수 없기에 '멀리 서서' 소리쳐 자신들의 상황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격리되고 소외된 사람들 이들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회도 길도 없이 용납되지 못하고, 용서받지 못한채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과 다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로새서 3:12-13)

 

기억하지 못하기에

 

   그리고 마을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그들은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열 사람은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 호소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병자의 치유규정 대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가던 그들은 가던 길에 모두가 치유함을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병의 특징은 퍼진다는 것에 있습니다. 즉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나병은 단순한 육신의 병이 아니라 를 상징하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이 나병을 다룰 때 육신의 병을 담당하는 의사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를 담당하는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 상태를 보이고 그가 선언하는데로 따라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마리아 인은 예수님에게로 돌아왔을까요? 그것은 그가 가던 도중 치유되는 과정을 통하여 예수께서 참 제사장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참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께 돌아와 그의 몸을 보이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 열 사람 모두가 깨끗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로 돌아온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엿느냐 그 아 홉은 어디 있느냐"(17) 돌아온 사마리아 인에게 묻는 것으로 봐서 돌아오지 않은 아홉 사람은 유대인으로 보여집니다. 성경은 의도적으로,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이 보기에 혼혈 민족이기에 이방인이라 취급합니다. 이제 병이 다 나았으니 사마리아 사람을 상종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제 볼일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간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직 이 사마리아 사람만이 자신의 병 고침에 관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말씀을 요즘 식으로 바꾸어 이야기하면, 안타깝지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교회 밖, 곧 세상 사람들이고,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기독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사장에게 간다는 것은 그들의 병이 나았다는 것을 확인 받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의 예법에 따르면 나병이 발하든지 나병이 나으면 그것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확인을 받음으로 가족과 함께 살아가든지 그렇지 않다면 격리를 할 것인지를 결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향해서 불쌍히 여겨달라는 한 마디를 외쳤을 뿐인데, 그리고 예수님을 만났을 뿐인데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병이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보이기 위해서 가던 도중에 모두가 깨끗한 즉 병이 낫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병을 낫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그들에게 생명의 능력을 베푸신 분이심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감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돌아 온다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한 사람의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돌아옵니다. 그는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을 향해서 달려와 땅바닦에 엎드려 감사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영어의 표현은 자신의 몸을 예수의 발앞에 던졌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열 사람의 나병환자들은 똑같이 믿음의 기도(외침)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육신의 건강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육신의 건강이 아니라 그들의 죄가 사해졌음의 선언입니다. 그러나 아홉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못한 것입니다. 한 사람은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은혜를 입었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야 했음이 마땅한데 돌아오지 않은 것을 책망합니다.

 

나오는 말

 

   예수님께 돌아온 그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참 메시야를 통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한 사람에게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다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시며 예수님은 그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포하십니다. 즉 그가 하나님께서 참 구원자 이시며 자신의 모든 삶을 회복하신 분이 하나님 이심을 인정함으로 그는 진정한 참 구원을 얻었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옴으로써 진정으로 그가 감사해야 할 대상이 누군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하나님만이 참 구원자이심을 알고 감사한 그야 말로 참으로 구원받은 자임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의 가슴에 깊이 새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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