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7-11(20240619)
들어가는 말
니체라는 독일의 철학자는 이런 가치에 관한 이러한 글을 남겼습니다.
'과거에는 틀림없는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잘못된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에 이것만큼은 자신의 확고한 신조라 여기던 것이 이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같은 변화를 자신이 어려서, 깊이가 없어서 세상을 몰라서라는 이유로 그저 묻어두지 마라. 그 무렵의 당신에게는 그렇게 사고하고 느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수준에서는 그것이 진리요, 신조였다. 인간은 늘 껍질을 벗고 새로워진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생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기에 과거에는 필요했던 것이 지금은 필요치 않게 되어버린 것에 불과하다 '(니체, 니체의말2 중에서/ 박미정, 시라토리 하루히코 역/삼호미디어)
내 인생에서 어떤 것이 가치가 있다고 여기며 살았는데, 껍질을 벗고 새로워지고 나서는 그것이 더 이상 가치있는 것으로 느끼지 못할 수 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니체가 껍질을 벗고 새로워진 인간이 다른 가치를 경험하고 필요를 느낀다고 말한 것처럼 바울 역시도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만난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인생의 가치관이 변하고 가치의 중심이 변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유익하던 것이 해로운 것으로
지난 주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의 그 동안 자신이 삶에서 가치있고 중요한 것이라 여겼던 것들에 대해서 5-6절에 열거했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누구보다 육체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람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되었고, 가문적으로도 베냐민 가문, 히브리인, 율법적으로는 누구보다 성경에 능통했던 바리새인이었으며, 예수님을 믿는 교회를 핍박할 정도로 유대인으로서 열심을 가졌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없을 정도라며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것을 '내게 유익하던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유대인으로서 그가 누리고 있던 인간적인 특권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해가 된다 말합니다. 당시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포함하여 구약의 율법을 준주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구원관과 대조를 이루고 있기에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는 요소, 즉 해로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고상한 지식이란?
바울이 이처럼 유익하던 것들을 해로 여기게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만난 고상한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여기서 '지식'이란 단순히 지적인 앎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적인 만남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사도행전 9장에 따르면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후에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바울은 단순히 지적인 앎으로 아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영적인 체험을 통해 자신을 부르신 예수님,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바울의 눈을 고쳐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행 9:17)
그리고 그때 사울은 영적인 체험을 합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행 9:18-19)
이러한 지식은 그가 경험한 지식 중 당연히 가장 고상한 지식이기에 그 외의 세상적 특권들은 배설물처럼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이로서 나는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쉬운성경 빌 3:8) 바울은 비로소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그분을 안 이후에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예수보다 가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중요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 지식이 바울이 가진 고상한 지식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가치가 된 것입니다.
변화의 시작 그리스도를 앎
변화는 어떤 계기를 통해서 시작되어집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 변화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 한다고 고백합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는 기쁨을 얻었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안에 유대주의 교사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이외에도 율법을 지키고 몸에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얻는 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상한 지식,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구원관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에 도달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3:20)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며 믿을 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의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 서신을 보면 믿음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 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엡 2:8)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부터 가치관의 변화는 시작됩니다. 구원은 철저히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9절)
바울의 소망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바울에게는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바울이 이제 살아가며 소망하는 것은 먼저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죽음에서 부활하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또 신앙의 길을 걸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그분과 함께 죽는 것이 소망이라고 밝힙니다. 이제는 세상 중심적으로도 자신 중심적으로도 살아가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분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서 살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이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죽는 데까지 이르려고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세상적인 가치 중심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가치 중심으로 변화된 삶이기에 그는 주님처럼 부활에 이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인생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11절)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그분을 알게된 그의 인생은 가치관으로부터 철저하게 부서지고 새로워지는 체험,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 중심, 세상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있습니다. 저와 어려분의 삶도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을 얻고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을 얻고 지키기 위해 힘쓰며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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