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1-16(참고 이사야 52:7-10, 고린도전서 9:13-18 / 20240526)
들어가는 말
우리교단은 제69회 총회(1998년)에서 “도시농어촌선교주일”을 결의하여 전국교회에서 지켜오고 있습니다. “도시농어촌선교주일”은 농촌선교, 빈민선교, 외국인노동자선교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위한 선교사업입니다. 농수축산물 과잉공급과 농수축산물 가격폭락, 농가부채 증가 등 농촌경제가 붕괴되고, 이농으로 인한 인구 감소와 노령화, 농약, 화학비료, 농업용 비닐, 축산 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 등 농어촌 사회는 지속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습ㄴ니다. 농어촌사회는 노인문제와 이주결혼여성으로 인한 다문화 문제, 이혼으로 인한 조부모에게 맡겨진 어린이의 증가 등 교회가 감당해야 될 선교 과제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농어촌은 한국교회의 모태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어촌의 형편과 함께 농어촌교회의 현실도 더불어 어려워져서 지금은 소수의 교우들이 교회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고령의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농어촌교회와 농어촌선교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농어촌선교를 더욱 절실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마을의 구심점이 되어 마을을 살려가는 선교적 전통이 더욱 필요해져갑니다. 농어촌은 인구는 줄었으나, 목회적 돌봄과 관심이 더욱 절실한 곳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가장 낮은 자의 자리로 내려가, 모두가 떠나고 포기하는 농어촌을 살려나가는 일에 힘쓸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둘씩 짝지어서 70인을 파송하시다.
9장 마지막 단락을 보면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신 후에 각처로 파송을 하십니다.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눅 10:1-2) 가만히 보면,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아주 계획적이고 조직적입니다. 복음 전파의 시급성과 복음의 보편성을 강조합니다. 예수께서 가시려는 동네와 지역에 먼저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70인을 별도로 세우시고, 동네와 지역을 구분하여 두 명씩 보냅니다. 그들을 둘 씩 짝지어 보낸 것은 서로를 격려하고 협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증인으로서의 사명과도 관련이 있었는데 유대 사회에서는 믿을만한 증거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사람의 증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칠십 인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방문하고자 하는 마을에 앞서 가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고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파송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포섭합니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눅 10:3-6) 그런데 그 복음을 증언하러 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당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 일을 행할 때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이 명령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선교 주체가 나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70명의 제자들처럼 파송을 당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추수하고 거두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일꾼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분께 우리의 선교를 맡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청빈한 마음과 모습으로 집마다 방문하며 그들에게 평안을 빌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의 씨앗을 뿌리면, 키우고 거두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워짐은 복음을 위한 것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사 52:7-8) 이 말씀은 ‘바벨론 이사야(제2 이사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유대인들에게 전하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곧 여호와께서 시온(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오셔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기쁨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고 다시 고향인 유대와 예루살렘에 돌아가 하나님의 통치로 구원을 맛보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 52:9-10) 10절 말씀에 '땅끝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땅끝까지 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도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사도들을 부르고, 그리고 70인의 사람들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오늘 교회라는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를 영혼의 추수를 위해서 추수할 일꾼으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 어려운 현실(농어촌의 현실)이지만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이란 이사야의 말대로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1절)가 오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사야 시대의 앗수르의 포로생활의 고단함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셔서 그들을 위로하실 것, 그리고 그들을 죄값을 대신 치르실 것에 대해서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팔을 통해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보았노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름답지만 힘듭니다. 때로는 서럽습니다. 핍박도 받고 오해도 받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세워진 우리의 길은 고단한 길입니다. 누군가의 집에 평안을 빌고, 영접을 받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고 환대받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할 것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선포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에게 유익한 길도 아닙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자랑할 기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당연한 일이라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자신의 자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 9:17) 오늘 우리도 이러한 사명을 위해서 세움 받은 사람들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길이기에 함께 갑시다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성령이 임해도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 고라신과 뱃세다 그리고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이스라엘의 도시들입니다. 그런데도 회개하지 않는 도시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들의 교만을 아시고,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고 물으시며 음부에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심판을 선언합니다. 오히려 이방의 시리아 페니키아의 도시 두로(티레 섬, 티루스)와 시돈이 회개할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도시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가, 또 바울의 사랑을 많이 받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경건한 유대인들도 제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존경받아야 할 한국 교회가 세상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황폐해질 것이고, 심판 날에 소돔보다 더 큰 화를 당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눅 10:16).”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성령강림을 맞아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세상에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평안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후는 하나님과 성령께 맡겨둡시다. 우리는 우리가 선 자리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하면 됩니다. 그 일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름을 받았고 그 일을 위해 협력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은 봄의 씨앗처럼 자랄 것이고 이 복음을 그들이 받아들이면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아 음부에까지 낮아질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어려운 현실을 딛고 우리가 더욱 힘서 하나님을 굳게 믿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신앙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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