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3(참고 신명기 5:1-21, 요한복음 14:15-31)
들어가는 말
지난주까지 부활절이 끝나고 이제 새로운 절기인 성령강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은 노회선교주일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에는 성년의 날(20일), 부부의 날(21일)도 있습니다. 2024년 성령강림절(聖靈降臨節, Whitsunday), 성령강림주일(主日)은 5월 19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째이자 승천 10일째 되는 날로, 이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행 2:1)입니다. ‘강림(降臨)’이란 신이 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에서 성령강림절은 성탄절, 부활절과 함께 3대 절기로 꼽힙니다. 특히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탄생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강림이 이루어져 초대교회가 탄생하는 역사적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사건의 성취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성령 충만한 삶의 모습과 그 영향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모습을 살펴봄으로 우리의 삶도 성령 충만한 삶을 경험하고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순절 : 성령강림절
오순절은 유월절 안식일 다음 날부터 오십 번째 되는 날입니다. 처음에는 농촌의 추수 감사 축제로 보리와 밀을 추수하고 햇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봄 수확 축제로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기념하는 축제로 새로운 국가의 출발을 알리는 새로운 것의 출발을 알리는 절기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한 절기에 성령께서 임하셨다고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동떨어진 분이 아니라 그들가운데 임하셔서 그들과 함께하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신명기 5:4) 이스라엘백성이 종되었던 이집트를 떠나 새로운 나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나라가 시작되는 시점에 백성들 가운데 오셔서 자신이 누구신지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6절)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하나님이 정하신 법(규례와 법도)를 통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들은 날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특별히 이 절기에는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날이었기에 이날에 성령이 임하였다고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이 주어짐으로 새로운 국가가 시작된 것처럼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인해서 새로운 교회가 시작되고 있다는 징표가 되는 것이기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이 절기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두려움 때문에 밖으로 돌아다니지 못하던 그들에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숨어서 지내던 그들이 이제는 소리 내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 주심으로 그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와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어떻게 복음을 증거해야 할까? 근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의 환경을 조성해 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미리 성령님이 오실 것을 말씀하시며 실의에 빠져있던, 절망에 빠져있던, 두려움에 처해 있던 그들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10만에 약속하신 또다른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그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성령의 징표들
그들이 단지 두려워서 또는 예수님의 유언 때문에 기도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다 대신 맛디아를 제비뽑기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함께 모였고, 지식적인 훈련도 예수님과의 3년의 공생애 동안 잘 쌓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지식으로만은 되지 않습니다. 그 지식을 충족할 수 있는 추진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 추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성령충만한 모습입니다. 그들만으로는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담대함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었습니다. 두려워 떨던 이들이 기도하던 중 오순절에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증표가 바람과 불과 방언으로 나타납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충만했다고 말합니다. 즉 생명의 기운이신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았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많으심과 그가 충만하게 오셨음을 말합니다. 봄기운이 새싹을 돋게 하고, 가을의 기운이 알이 영글게 하듯 성령께서 우리에 오셔서 우리가 생명력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갈라지는 혀같이 임했다는 것은 각사람에게 은혜가 임했음을 말합니다. 또한 방언을 통해서 모두가 자신들의 말로서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전달의 형태를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서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앞으로 그들이 걸어야 할 복음의 길에 대해서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에 휩싸였는데, 그것으로 인해 그들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성령충만이란 이처럼 성령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징표들은 이러한 성령충만한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
하나님의 큰 일이라는 것은 결국 ‘복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이제 승천하셔서 다시 재림하실 주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성령의 임재하시고 강한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통해서 그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담대히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숨어지내고, 쉬쉬하던 것을 이제는 드러내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때로 사람들의 눈에 이것이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미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놀라며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바로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변화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의 길을 따라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잇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14:20, 26, 29)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 질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였다 하더라도 성령께서 역사하심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나타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니믈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우리들은 두려움에 떨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여시고 우리를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나가는 말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충만한 삶을 살게 될 때 우리는 담대한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식적인 준비가 되었더라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손을 잡고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일에 선하고, 악에 짓눌린 사람들을 만나면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 10:38)
절망중에 계십니까?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는 것들이 두려우십니까?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을 체험한 이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담대한 삶을 결단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이러한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약속은 과거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신명기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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