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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의 마음을 가진자

꿈지기의사랑 2023. 10. 10. 06:09

마가복음 8:1-9(참고 신명기 32:7-14, 사도행전 14:8-18/ 20231008 )

 

들어가는 말

 

   쌀쌀한 날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불을 덮어야 하고, 따뜻한 아랫목이 생각나는 시기입니다. 환절기 건강에 늘 유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창조절 여섯 번째 주일입니다. 완연한 가을 날씨와 함께 결실의 시간도 가까워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성숙해지기를 바랍니다. 사회적으로 강력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평범한 우리의 이웃인데,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사람에 대한 존중이나 긍휼이 보이지 않는 잔인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함께 묵상하며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당장 마가복음 630-44절까지에 있었던 오병이어의 사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과 오늘의 이 사건에는 아주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6장에서의 대상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8장에서의 대상은 바로 이방인들입니다. 6장에서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목자가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8장에서는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애초에 목자가 없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를 통치한 사람은 헤롯입니다. 그가 어떤 지도자인지를 보여주는 한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례요한을 죽인 사건입니다. 세례요한은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책망했습니다. 헤롯은 세례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죽이고 싶었지만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것을 알고 두려워서 하지 못했습니다. 헤롯의 생일날 궁중에서 큰 잔치를 하고 해로디아의 딸이 그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헤롯은 그 딸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나라의 절반이라고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딸은 어머니 헤로디아의 뜻을 따라 세례요한의 목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그것이 헤롯의 궁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마가복음6:14-29)

   그런 사악한 헤롯의 통치 아래 백성들은 의지하고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여 방황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목자 잃은 양처럼 유리 방황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위로받았습니다. 굶주림과 상처의 아픔을 가지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 시간이 사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8:2) 배고픔도 잊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그들을 예수님은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집에 돌아가 먹을 것을 먹고 오라고 하면 가는 길에 기진하여 쓰러질지 모른다고 염려하셨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음식으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런 이들을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의 목자와 같이 되신 것입니다. 결국 종말의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백성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실 목자가 되신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진리로 이끄시고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넉넉함으로 채워 주시는 잠 목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 긍휼

 

   이들의 기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사람을 대하는 예수님의 마음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목자없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 사흘이 지나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바로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신명기 327절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억하고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역사는 개인에게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돌아보고 그 속에 일하신 하나님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으시고 만드시고 세우신 아버지입니다(32:6) 하나님은 많은 민족 중에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택하신 기업이요 소유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켜주셨습니다. 최우선적으로 소중하게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32:9-12)

   사도행전 14장의 바울의 마음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그를 주목하여 본 바울의 행동은 그게에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명하며 그 사람을 치유한 사건입니다. 이것은 그의 마음에 함께하신 하나님의 마음 긍휼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는 이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 사랑의 마음을 통해서 일어남을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이 나와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에서는 무리들이 모인 그날, 그들을 가르치셨고, 때가 저물어 저녁이 되었을 때 먹을 문제를 해결하셨지만, 이 경우에는 이미 사흘이 지날 동안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조금 달리 해석해 보면, ‘이제 문제를 해결할 때가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말은 사흘입니다. 성경에서는 사흘이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되거나, 회복의 시작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라고 하신 이 말씀은 이제 곧 함께 떡을 떼는 일이 있게 될 것이라는 예고와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생명의 떡으로 오셨으며, 자신의 육신을 찢어 나누는 것이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전인류를 향하게 될 것을 예표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기적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사도행전은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여행 중에 루스드라에서 경험한 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곳에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바울의 말씀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마음에 믿음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일어나 걸었습니다.(사도행전 8:10)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소동했습니다. 그들은 신이 강림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모시고 제사 드리려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광경을 보고 그들을 진정시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라 당신들과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하고 말한 뒤에 그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에 대해 증거 했습니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함이라(14:15) 바울은 그를 통해 일어난 이적을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헛된 일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증거했습니다.

 

나가는 말

 

   기적은 우리의 삶에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일어납니다. 오늘 교회로서 우리가 다른 이들을 대할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약속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미 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서 살아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고,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들에게도 자신의 육신을 떼어 주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만찬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성찬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성찬을 통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온전히 세워져 가는 은혜가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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