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5:14 / 찬송 419장
일곱번의 의미
아람의 군대장인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장군이었습니다. 즉 왕이 아끼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한 용사였습니다. 그러한 나아만이였지만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몸에 있는 육신의 질병(나병환자)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에게 찾아가면 자신의 몸이 회복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선물을 챙겨서 한달음에 달려갑니다. 자신이 한 달음에 달려온 것처럼 환대받고 대접받고 자신의 문제를 회복할 줄 알았던 그는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지도 못하고 사환인 게하시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씻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회복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귀한 대접을 받고 왕이 아끼는 자신을 나와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 하는 선지자의 태도에 화를 참지 못합니다. 돌아가려고 합니다. 부하들의 설득을 통해서 몸이 회복되게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일곱 번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온전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기 전, 즉 여섯 번 물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그로서도 정말 내가 여섯 번 물에 들어갔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한 번 더 들어간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즉 일곱번이라는 것은 그가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몸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태도로 변화되는 과정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끝까지 순종하라
화도 나고 체면도 구겨져 버린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엘리사의 말에 끝까지 순종하여 일곱 번째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정말 엘리사의 말대로 그의 몸이 어린 아이의 살같이 깨끗하여 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구하는 것도 한번, 두번 구하고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만이 아무런 변화가 없었어도 요단강에 일곱 번을 들어갔던 것처럼 주님 앞에 일곱 번을 나아가는 마음으로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한다고 하더라도 온전한 마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하님의 말씀과 내 육신의 생각이 내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두 마음이 서로 싸우는데 그 동안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절) 그런데 우리가 내 육신의 생각을 부인하고 주님 앞에 계속 나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의 생각을 점점 이겨나가서 결국 온전한 믿음 가운데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