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34-39(참고 사무엘하 28:13-17, 야고보서 4:1-10)
들어가는 말
오늘은 창조절열번째주일이면서 24절기의 열아홉째 절기인 입동(立冬)입니다. 입동은 예로부터 겨울의 길목이라 불렸습니다.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다는 말입니다. 가을 추수가 마무리 되어가는 때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김장이 시작되는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쉴 틈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김남주 시인의 <옛마을을 지나며>라는 시가 떠오르는 때인것 같습니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추운 겨울이 와도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통해 더욱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을 통해서 이웃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도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만나는 시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우선 순위
지난 주 마태복음 5장에서 원수사랑을 선포하셨던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가족을 원수로 여겨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원수 사랑을 선포하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세상에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34절)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이 세상의 모든 번영이 유대 땅을 중심으로 해서 꽃피울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본문에서 화평을 주러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이를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바로서의 화평, 즉 현상적(정치, 경제 등)이고 외적인 평화를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실로 예수는 본질적(하나님과 인간의 화목,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이고 내적인 평화를 선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진정한 참 평화이신 예수가 이 땅에 오심으로 해서 이 땅에 있는 거짓 평화, 악한 것과의 싸움은 불가피한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악과 싸울 수 있는 검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행되어지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자칫 예수님께서 세상을 분열 시키고 싸우게 만들러 오신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평화(샬롬)주러 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가족간의 화목을 깨뜨리고 불화하도록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5-36절)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여 전도 사역지로 파송하신 내용입니다. 열두 제자들의 명단을 언급하고 복음 전파자의 임무와 자세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사랑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 사랑을 선포할 때, 적대자들과 마찰을 피하고 온유와 겸손으로 대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세상과 타협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세상은 아버지와 어머니, 곧 가족까지 속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의 우선 순위라는 말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7-38)
하나님께 합당한 사랑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목숨을 하나님을 위해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37-38절에서 밝히신 것처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것이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께 합당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때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잃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가족을 사랑하지 말고 무조건 배척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선 순위를 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족보다도 하나님을(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다른 어떤 사랑보다 앞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족마저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족만이 아니라 자신이 될 지라도 자신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무엘하 23장 말씀은 다윗의 마지막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신 사실을 노래하는 장면과 그 뒤를 이어 다윗이 나라를 굳건히 통치해 갈 수 있도록 생명 바쳐 자신을 도와준 3인의 용사들을 회고하는 장면입니다.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삼하 23:13-15)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고향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진영에서 베들레헴까지는 20km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이 말은 고향에 대한 향수이고 블레셋으로부터 베들레헴을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의 세 용사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삼하 23:16a)”습니다.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물을 길어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드립니다. 왜냐하면 세 명의 용사가 가져온 물은 물이 아니라, 그들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삼하 23:16b-17) 다윗은 이 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세 용사의 생명인 피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건 충성스러운 세 용사의 마음을 알았던 다윗의 마지막 날 고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에는 우리의 목숨까지도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잃으면 얻게 됩니다.
우리의 가진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게 될 때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육신적인 생명을 가지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인간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일들에 우리의 인생을 소비하고 그것들에만 집중하다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이것은 비단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물질에 집중하다가 물질은 얻었지만 가정을 잃는 것과 같은 일들입니다.
예화)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시간보다 소중하게 여기는데 그로 인하여 잃는 시간은 금전으로도 사지 못한다."
평생동안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은 돈이나 부는 마음껏 손에 넣을 수 있지만 일생에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돈보다 시간이 훨씬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돈을 쓸 때에는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약속시간에 늦거나 쓸데없는 일로 남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습니다. 시간과 돈 모두가 중요하지만 시간이 더욱 소중합니다. 시간으로 돈은 살 수 있찌만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없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삶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생명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주의 일에 힘쓰십시오. 특별히 주님과 만나고 함께 하는 일에 힘쓰십시오. 예배하는 일, 기도하는 일, 말씀을 읽으는 일을 통해서 주님과 교제하십시오. 세상적인 것을 버리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5)
나가는 말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외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7-10) 하나님 사랑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말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고,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면 주께서 우리를 높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웃사랑의 힘든 길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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