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1-6
네비게이토의 국제선교를 담당하는 리로이 아임스 목사가 캐나다 토론토공항으로 가기 위해 시카고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뭔가 이상해서 다시 게이트(출입구)를 확인해보니 엉뚱한 장소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사람은 많고 5분 안에 제 게이트까지 간다는 게 불가능해 보여 난감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승무원 복장을 한 신사가 와서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 팔을 꼭 잡고 따라오세요”라고 했습니다. “아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저는 토론토까지 비행기를 몰고 갈 조종사올시다. 설마 내가 가기 전에 비행기가 먼저 떠나진 않겠죠?” 그때 아임스 목사는 사도행전 2장 25절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라는 말씀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고백처럼 우리가 주님의 팔을 붙들고 목자 되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광야 같은 세상에서도 주와 동행하는 성도가 누릴 복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주와 동행하는 성도가 누릴 복이 무엇인지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하나님은 공급하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이사야 40장 11절은 “그는 목자같이 양떼를 먹이시며…”라고 말씀합니다. 목자가 양을 좋은 풀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마음과 같으신 하나님이시기에 또한 우리의 삶에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시기에, 모든 것에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7:17) 주님과 동행하게 될 때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심으로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늘 쫓기는 생활 속에서도 그의 삶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늘 쫓기는 삶이었지만 그러한 삶 속에서도 그는 부족함이 없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를 따라서 도우시고, 풍족하게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부족함이 없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바울의 말했던 것처럼 일체의 자족함을 배운 마음, 즉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즉 다윗이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백성의 욕구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삶 가운데 충만하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그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총으로 차고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실 것임이니이다”(시 84:11)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참된 안식을 주십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2절). 우리 인생에는 끊이지 않는 불안과 염려가 있습니다. 쉬어도 참 쉼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 중심에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안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마 품에 뉘여 잠든 아이의 얼굴에는 불안이 없습니다. 목자없는 양에게 참된 안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각종 들짐승들의 위협에, 광야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안식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자가 없는 양이란 아무런 자기 방어 수단이 없습니다. 방향 감각이 전혀 없어서 무리와 유리되어 죽음의 위협에 쉽게 노출 됩니다. 하지만 목자의 인도하에 있는 양은 초장이나 음료의 걱정이 없습니다. 목자는 양을 필요한 초장과 물가로 인도하고 모든 위험과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며 풍성한 것으로 양을 채워주기에 양은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목자 되신 주님 품에 자신을 맡기고 그분을 의지할 때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아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우리의 삶은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3절). 소생은 죽어가던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면 영혼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회복입니다. 그분과 함께 있으면 영혼과 삶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그의 영혼이 회복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능력과 돌보시는 사랑에 의해 다윗이 가졌던 죄악과 고난의 방황에서 이제는 안정을 되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의지가 그의 생명이 회복되는 축복을 누리는 길이었습니다. 정태기교수는 그의 책 「위기와 상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떠나는 순간, 인간의 영이 흔들리면서 위기가 시작된다. 다시말해서, 마음 가운데서 하나님을 내보내고 대신 다른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순간 인간은 힘을 잃고 위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영혼이 소생될 수 있는 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영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활력을 갖게 되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생명력을 잃는다. 영이 생명력을 잃게 되면 정신도 함께 활력을 잃게 되고 육체도 따라서 활력을 잃게 된다. 즉 영의 병은 만병의 근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회복함으로써 우리의 영이 소생(회복)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소생시키셨다고 고백한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에도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회복함으로 인해서 우리의 영혼까지 전인격이 소생되는 은총이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4절). 최고의 전자경비시스템이 우리 내면의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주님만이 참 평안을 주실 수 있습니다. 지팡이는 ‘네쩨르’인데 올리브나무의 뿌리에서 원을 그리며 자랍니다. 이것은 위험한 곳에서 안전한 곳으로 양을 옮기고, 물과 진흙의 깊이를 잴 때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막대기는 ‘호테르’인데 양떼를 인도할 때 방향을 지시하거나 강력한 무기가 되어서 짐승들로부터 양을 지키는 무기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두려움 없이 사는 것입니다.
'수요기도회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합니다 (0) | 2010.12.22 |
---|---|
폭풍우 속의 평안 (0) | 2010.10.23 |
다윗 왕국의 번영 (0) | 2010.09.05 |
보시는 하나님 (0) | 2010.08.07 |
하나님께 뿌리를 두라 (0) | 2010.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