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19-20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질문중의 하나는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입니다. 안산대학교의 김재중 교목도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 때마다 학생들을 향해서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고 합니다.
"믿음이란, 행하는 것입니다."(belief is act)
본문의 야고보서 기자인 야고보는 믿음이란 화석화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랑의 실천을 동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8절)
이 시간 야고보서의 말씀을 중심으로 믿음과 행함(사랑의 실천)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믿음의 출발은 행합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 라야 들어간다'
본문 속에서도 행함의 중요성에 대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없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과 같아서 그 생명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모양은 있으되 능력이 없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머리와 지식으로만 믿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가슴으로, 우리의 삶으로 믿어야 합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아만장군은 아람의 장군입니다. 그는 전쟁에서도 용맹스럽게 싸웠으면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한 장군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하나의 결점이 있듯이 그에게도 결점이 있었는데, 바로 건강상의 결점이었습니다. 문둥병(한센병/피부질환)에 걸린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전쟁에서 잡아온 히브리의 한 노예아이가 자신의 나라의 선지자에게 가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말대로 그는 이스라엘 왕을 찾아아고, 그곳에서 엘리사에게로 가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의 여느 주술사나, 선지자들처럼 엘리사에게 찾아가면 자신에게 주술적인 행동을 통해서 병이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종인 게하시를 보내서 요단의 더러운 물에 몸을 일곱 번 담그라는 말만을 남겼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의 말류로 속는 셈치고 요단강의 물에 들어갔습니다. 여섯 번의 시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일곱 번째 그가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 몸의 변화가 느껴졌고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나아만의 치유의 시작이 된 것은 그가 엘리사의 말을 듣고 요단에 몸을 담그는 순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나아만이 말씀을 듣고 실천함으로부터 그의 믿음은 시작된 것입니다. 믿음은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의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만들 때 맛을 내기 위해서 소금을 집어넣아야지 가지고만 있다고 맛이 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행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계획은 많이 세우지만 실천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살을 빼야지, 담배를 끊어야지, 운동을 해야지 등 '~을 해야지' 병에 걸려 있습니다. 해야지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정작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걸음을 변화의 방향을 향해서 한 걸음 떼어놓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기적을 이루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변화되어야 합니다. 물이 먹고 싶으십니까? 우물에 두레박을 집어넣고 물을 길어 올리는 실천을 하십시오. 물을 먹고 싶으십니까? 마중물을 집어넣고 펌프의 손잡이를 잡고 펌프질을 해야 합니다. ~해야지 하는 계획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안심시킬지 모르나 변화시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삶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저, 주여, 주여 입술로 외친다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입니까? 우리가 그렇다고, 구원의 백성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생각만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그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각이라는 프로그램이 주어졌다면 삶의 실천이라는 동작이 되어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가져야할 바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면 너희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4-5)
예수님은 이 땅에 고난받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고난을 받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찔리고 채찍에 맞고, 결국 물과 피를 쏟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기적의 역사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갈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기적은 물을 항아리에 담고, 그물을 생명을 걸고, 주님의 말씀에 의지한채 연회장에 떠다준 사람들의 살아 있는 삶을 통해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신앙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 기적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일서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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