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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시키시는 하나님

꿈지기의사랑 2006. 8. 20. 07:38
 이사야 57:14-21


   우리 앞에 놓인 절망적인 상황에 우리들은 당황하지만, 오히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의 참 모습을 돌아보며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당하게 되는 어려움을 하나님과 만나는 계기로 삼고 참된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절망


   반세기가 넘는 바벨론 포로생활에 지치고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잡아갔던 바벨론 제국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게 패하자, 마침내 해방을 맞아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그들은 잔뜩 부푼 마음으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 화려했던 이스라엘과 유다왕조의 자취는 간 곳 없고, 오래 전쟁과 패망으로 인하여 완전히 무너진 폐허더미만 그들을 반깁니다. 왜 그들은 이러한 전쟁과 패망과 폐허를 맛보아야 했을까요? 우리는 17절 말씀에서 그 힌트를 찾아볼수 있습니다.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쟁과 패망으로 인해 포로의 고초를 겪게 한 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 채, 죄악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70년간의 침묵으로 그들에게 심판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러한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죄악 속에서 살아간다고 선포하십니다. 패역하여 자기의 마음의 길로 행하여 멸망의 길로 간다고 선포하십니다. 죄로 인해서 모든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질병중에 한센(나병, 문둥)병이라고 하는 병이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신체가 뒤틀리거나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병에 감염된 곳은 그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감염된 곳의 세포(통증을 감지하는 세포마져) 파괴해 버리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신체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죄는 우리의 영적인 감각을 더디게 만들어서 우리의 삶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때에 파괴해 버립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은 마치 이러한 모습과도 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여전히 죄악가운데 서 있는 모습이라면 혼란과 불안정한 삶으로 인해서 흔들리며 살아갈 것을 말합니다. (20절) 평강이 없이 살아갑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꽃


   그런 상황에서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우고자 삽을 듭니다. 그 옛날 번영을 가져다주셨던 하나님은 그 때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시름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일으키시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별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패역하고 자기들 마음의 고집대로 행할 뿐입니다.(17절)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행위를 샅샅이 아시고 그들의 행하는 길을 다 보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을 대하시고, 슬퍼하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며(18절), 마침내 그들을 고쳐주고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고 선포하시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말에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황스럽고 혼란한 일을 겪게 될 때, 그 당한 일보다도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고, 우리의 영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호랑이한테 잡혀갈지라도 우리의 영이 주님 품 안에 있다면, 능히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예화) 11월에 들어서면서 폐렴으로 앓고 있는 존즈는 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 창 밖의 잎만 세고 있었다. 그리고 간호해 주는 친구 수우에게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는 말을 한다. 그들의 밑층에 사는 화가인 베어만 노인은 40년 동안을 그림을 그리며 살았지만 아직 걸작을 그려보지 못했다. 수우는 노인에게 존즈의 망상을 이야기하고 정말로 잎새와 함께 떠나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다. 다음 날 아침 수우가 창문의 휘장을 올려보니 밤새도록 세찬 비와 사나운 바람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벽돌 담벽에 담쟁이 잎새 하나가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 지나도 잎새는 여전히 붙어 있었다. 존즈의 병세는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사는 베어만 노인도 폐렴으로 앓고 있다는 말을 해준다. 그날 오후에 수우는 존즈에게 베어만 노인이 죽었다는 것을 알리며 담장에 잎새를 그렸다는 것을 말해준다. -O. 헨리의 마지막 잎새-


   이처럼 희망은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줍니다. 이러한 작은 나뭇잎 하나를 보고도 희망을 얻어 생명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을 봅니다. 하물며 온 우주를 만드시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된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희망이십니다. 위로이십니다. 우리를 고치시는 분이시며, 새로운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우리의 길을 회복하시고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14절) 우리에게 다가온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절망스러운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아시고, 보셔서 하나님의 선하신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 주어집니다.


맞장구-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자리로


   우리의 영을 소생시키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이러한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질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를 내셔도 자신이 지은 것들이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터질까하는 마음으로 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견디지 못할까봐 이제는 모든 진노를 멈추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일까요? 본문에는 두 가지의 태도가 나옵니다. 하나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교만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악을 버리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비슷한 말입니다. 통회하는 사람들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둘이 아니고 결국 하나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교만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감각없던 영과 우리의 무심하던 마음이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우리의 과거의 모습을 알지만, 다 보았지만 그것들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회복의 역사가 여러분의 가정과 삶에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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