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4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천재 소년들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송유근이라는
아이가 주목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고, 영재학원등이 성행하는 것으로도 우리는 천재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본문의 말씀과 <천재소년 테이트>라는 영화를 보면서 저에게 그들에게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만들어 주었고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4절上)
너희가 그들에게 주의를 주거나, 그들을 권하거나 그들을 책망하게 될 때 그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그들의 판단력을 일깨워 주어 자신들의 이성으로 처리하도록 힘쓰는 방식으로 행하라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본문은 부모가 자녀를 분노케 하는 태도나
말, 행동을 피해야 함을 말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정도 이상의 엄격한 훈련, 비합리적요구, 권위의 남용 등을 행하지
말아야 하며 자녀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이해하여 자녀의 실제적인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그들의 인격을 무시할 때 분노합니다.
예화1) <천재소년 테이트>라는 영화가 이에 대해서 보여줍니다. 7살의 한 천재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마와 이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천재들을 연구하는 한 여 박사와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명목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은 아이에게 결코 행복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은 그러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엄마와 헤어져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준과 가치속에 이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묻어 버립니다. 그러다가 방송을 통해서 천재소년들의 이야기가 나가게 됩니다. 주인공 소년도 그 방송에 참가합니다.
자신이 왜 방송에 나가야 하는지 조차 모른채 어른들의 종용에 의해서 나가게 됩니다. 자신의 시를 낭송할것을 요구당합니다. 소년은 시를
낭송하다가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그리고 전화기를 부수며 자신의 분노를 표출합니다. 아무도 그를 어린 아이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천재라고하는 면만을 들먹입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천재이기 전에 사랑을 받아야할 소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찾아와서 그와 포옹을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 소년이 원했던 것은 천재로서
대접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8살이 되는 생일에 그는 엄마와 함께 춤도 추고, 케익도 자르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른 여느 아이들과 같이 지내며
행복을 맛봅니다. 이 소년은 그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낍니다. 자신을 안아주고, 놀아주고, 함께 춤춰줄 수 있는 엄마가 필요했던 소년은 엄마를
다시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더 천재적인 소년이 나오면서 그는 세상밖으로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자신이 잃었던 엄마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랑받는 행복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인격이 무시된 곳, 즉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 자녀는
분노하게 마련입니다.
이중잣대를 드리댈 때 그렇습니다.
제프 벤본데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에게 방을 어지럽히지 말라고 명령한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합니다.
자녀에게 하나님과 교회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화2) 어느날 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다.“선생님, 제 아이가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 이빨이
다 썩었어요. 사탕을 먹지 말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안듣습니다. 제 아들은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들어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런데 뜻밖에도 간디가 말했다. “한달 후에 데리고 오십시오.그때 말하지요.” 아이 어머니는 놀랍고도 이상했으나
한달을 기다렸다가 다시 간디에게 갔다. “한달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 “한달씩이나 또 기다려야 하나요?” “글쎄 한달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 아이 어머니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참고 있다가 한달후에 또 갔다.“얘야, 지금부터는 사탕을 먹지
말아라.” “예! 절대로 사탕을 먹지 않을래요.” 소년의 어머니가 간디에게 물었다. “선생님, 말씀 한마디 하시는데 왜 두달씩이나 걸려야
했나요?” “실은 나도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사탕을 먹고 있었어요. 그런 내가 어떻게 아이보고 사탕을 먹지 말라고 할 수 있나요.
내가 사탕을 끊는데 두달이 걸렸답니다.”
이외에도 아이들은 분내게 하는 것에는 그들의 말에 귀담아 듣지 않는것, 창피를 주는 것, 엄마아빠가 함께 있어야
할 때 없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주의 해야 합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라(4절 中)
자녀들이 분노하도록 하지 말고 바울은 교양으로 양육하라고 말합니다. 적절한 시기의 체벌을 통해서 자녀들이 바르게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지를 할 때는, 어떤 행동에 해하여 된다든가 안 된다든가 둘 중에 하나가 분명해야 합니다. 또아이들을
화나게 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신중해야 합니다. 교양이라는 말은 교육과 훈련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그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아이를 가르치고 또 그것이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훈련 시키라는 말입니다.
예화3)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쇼핑을 갔다고 할 때, 어머니가 물건을 사는 동안 아이는 장난감 가게에 가서 인형을 골라왔습니다.
어머니가 돌아왔을 때 아이는 어머니에게 믿고 기대는 마음으로 "엄마, 나 이 장난감 갖고 싶어. 사 주시겠어요?"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물건을 사느라 돈을 다 사버렸고, 달이 정말 그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르고 불쑥 "아유, 장난감을 또 사. 너는
집에 이보다 훨씬 많은 장난감이 있지 않니. 도대체 어떻게 된 아이가 보는 것마다 모두 가지려고 하니, 갖고 싶어도 좀 참아야 할거
아니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아이는 분노하게 될 것이고 그 아이를 달래려면 오랜 시간이 흐를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로는 교육할 수 없습니다. 그 아이의 원하는 것을 인정해주고, 최소한의 분명하게 한계를 그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그러하나 모습이 없다면 그 아이를 자녀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5-7절)
우리는 자녀들에게 믿음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 출석을 잘하고, 십일조를 하고, 매일 헌신했기
때문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기뻐한 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굳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깊이 뿌리박힌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의 뿌리를 잘 내리도록 그들을 교육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말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범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행동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의 신앙의 태도가 우리의 자녀이 신앙의 태도를 만들어가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양육하라(4절 下)
양육하다라는 말에는 세워주고, 영양을 공급해주며, 봉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가
아닙니다. 윽박지르거나 강요하지 말고 그들이 스스로 행동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믿음으로 자랄 수 있도록 그들에게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도 필요합니다. 제프 밴본데른 그의 책 『하나님이 복주시는 가정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에서 양육하는데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저주의 양육이요, 다른 하나는 은혜의 양육입니다. 저주의 양육은 통제의 환경을 만들고 강요하고 건강해 보이도록 하는
양육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양육은 자신감을 주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주위의 은헤의 관계를 만들어 주며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섬김, 제공, 세워줌, 준비, 자유스러운 분위기, 훈련, 기회를 주는 것등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은 지금 완성된
모습으로가 아니라 성장하는 모습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이 자라는 과정 중에 있기에 넘어지면 일으켜 주고 그들이 스스로 설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롤프 가복은 『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사회 여기저기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온갖 유혹을 받고 있다. 그들 주변을
둘러쳐 줄 보호막이 필요하다. 인생 초기부터 그 방벽을 두텁고 강하게 쌓을 수록 자녀들은
그만큼더 안전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사랑이다. 우리가 자녈르 축복할 때마다
사랑이라는 방벽을 쌓기 위한 벽돌이 한 장, 두 장 놓여진다. 그리고 방벽은 더욱 튼튼해진다."
여러분의 사랑을 통해서 그들이 일어 설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그러한 축복은 아이들이 부모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줄 알도록 돕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인정하게 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먹이고
그들이 하나님을 깨달아 가도록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도록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5-16)
말씀을 듣고 배움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소유하는 자녀가 되도록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자녀들이 바른 신앙인으로 바른 인생으로 살아가도록 말씀을 통해서 그들을 양육할 때 그들이 믿음에 굳게 서서 자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