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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찬양예배설교

동료의식 속에서(남신도 헌신예배)

꿈지기의사랑 2006. 3. 5. 22:34
 고린도 후서 7:2-13


동료적인 관계

 

   본문에서 우리는 동료가 된다는 것의 몇 가지 힌트를 얻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2절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즉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임으로 서로에 대해서 인정해주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어떤 심적․물질적인 부담을 주지 않았고, 해를 끼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자기가 먹거나 쓸 것을 스스로 책임졌습니다. (자비량) 그는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쓸 것을 넉넉히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가운데 자신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러한 바울을 거짓 교사들의 말만 믿고 마음으로 밀어내는 그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는 바울입니다.

   두 번째, 단초는 3절의 내용과 같이 함께 죽고 함께 살겠다는 공동체 의식 가운데서만 동료가 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에게 있어서 살든지 죽든지 언제나 함께 하고자 하는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가족관의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구약성경 룻기에 보면 잘 살아보겠다고 고향을 떠난 나오미에게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그는 남편도 두 아들도 재산도 모두 잃어버리는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녀에게 룻이라고 하는 자부가 동거동락하겠노라는 말을 통해서 큰 힘을 줍니다.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기 1:16-17)


   바울은 그들을 자신과 다른 존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자신 안에서 자신과 동일 시 합니다. 그들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그들이 기쁘면 나도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정죄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으로 묶인 사랑의 관계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 줄지라도 아깝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다면 기쁨이라고 까지 여깁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동료로서 함께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목회자와 성도, 성도와 성도간의 관계입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세 번째 단초는 서로를 믿고 자랑하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허물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을 자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에게 부족함이 있지만 그들을 바라볼 때 세상적인 눈으로가 아니라 사랑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 보았기에 그들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즉 서로를 향한 칭찬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듭니다. 칭찬은 식물이 잘 자라도록 만듭니다. 칭찬은 서로를 높여주고 존중받는 존재가 되게 만듭니다. 칭찬은 서로의 인격과 가치를 높여줍니다. 한 집안 식구끼리 서로를 비난하고, 비판하고 비평하는 모습은 결국 서로 향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모습과 같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주목할 때 우리가 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은 그 모습 가운데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칭찬의 배경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밑바탕 가운데서 가능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여러분은 전적으로 신뢰하고 여러분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러한 서로를 향한 격려와 칭찬이 넘치는 남신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여러분의 옆에 있는 그 분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자랑하고 위로하는 모습 속에서 여러분은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환난이 오더라도 그 위로의 힘을 통해서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서로를 기뻐하는 모습 가운데서


   바울은 마게도냐를 전도여행 할 때 외적으로는 끊임없는 환난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풍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옥에 갇히는 상황까지 겹치지 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만나기로 했던 디도는 오지 않았고, 고린도 교회는 여전히 분쟁가운데 있고 자신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오해의 소식은 더욱 그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아셨는지 디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극심한 영적, 육적 탈진을 경험하고 있는 바울은 디도를 만나는 것으로도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쁨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조금씩 신앙을 회복해 가고 있다는 소식으로 인해서 더욱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에게 가지고 있던 오해들이 풀리고 이제는 그들이 영적인 아버지인 바울을 얼마나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한다는 소식(사모함)으로 기뻤습니다. 그동안 그를 오해하던 모습에서 돌이켜서(애통함) 이제는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옹호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그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책망의 편지를 쓰면서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교인들을 책망하느라 그의 마음이 녹을 대로 녹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디도를 만나고 그가 전해준 소식으로 인해서 그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실음이 한 번에 날아가는 기쁨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변화를 자신의 변화 이상으로 기뻐합니다. 이것이 참 동료적인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서로의 회복을 기뻐하고, 서로의 즐거움을 즐거워해 주는 것입니다. 사돈이 논을 사면 배우픈 것이 아니고, 사돈이 잘되면 나도 즐겁고, 사돈이 힘들어 하면 나도 힘든 것이 바로 동료로서의 공동체, 교회의 모습입니다.


근심속에서


   동료로서의 공동체는 서로를 위해서 충고하고 또 그 충고를 생각하고 받아들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죄악된 모습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잘못된 길을 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충고합니다. 그러나 그 충고는 때로 우리의 마음에 근심을 줍니다.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그의 충고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근심을 바울은 사망으로 인도하는 세상의 근심과 구별합니다. 깊은 기도와 고민 가운데서 행하는 충언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로 인해서 그들이 변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열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게 되었고 의문이 생겼고 두려워할 줄 알게 되었고 그리워하는 마음과 헌신하려는 마음이 생겼고 악을 징벌할 줄 알게되었습니다.”

(고후 7:11, 공동번역)


   사랑과 기도 가운데서 행한 바울의 충고는 고린도 교인들이 그들의 잘못된 모습으로부터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짐으로 불의를 떠나기로 결단하게 하였습니다. 사랑은 죄를 묵과하거나 방관하는 모습이 아니라 사랑과 기도속에서 나오는 충고를 통해서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의 길을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욱 아름다운 동료애를 만들어내고 더욱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갑니다. 여러분이 서로를 향해서 끊임없이 관심 갖아 주시고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가운데서 하는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더욱 아름다운 교회가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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