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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찬양예배설교

눈물을 강물처럼

꿈지기의사랑 2005. 8. 13. 04:43

예레미야애가 2:18-19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가정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넘치기를 바랍니다. 여신도 헌신예배라고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헌신을 결단하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찰스링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헌신은 상대방이 기대하거나 처음에는 감사하지 않을 때조차

    그곳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헌신, 獻身, self-devotion에 정의를 찾아 보았습니다.

 

국어사전 : 어떤 일에 자기의 이해 관계를 떠나 희생적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힘을 다함.

 

두산백과 :  그리스교에서 소명에 응하여 몸을 바치는 것.

 

   헌신이란 "당신 자신을 한 가지 목표에 완전히 쏟는 것, 그리고 그 목표에 이르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자기를 절제합니다. 그것은 썩어질 월계관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월계관을 얻으려는 것입니다....그들은 금메달을 따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나 기꺼이 포기한다. 담배를 끊기도 하고 술을 멀리하기도 한다. 늦게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중지하고, 건전하고 규칙적이며 절제된 생활을 영위한다.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주된 조건은 재능이나 은사가 아니라 헌신이다!   -하의진, <헌신>中-

 

   "헌신, 곧 완전히 내어 맡기는 것은 믿음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여기서 믿음이란, 무엇보다도 행위(works)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에(grace) 기초한 것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완전히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믿는 것을 뜻한다."    -하의진, <헌신> 中에서-

 

 

   본문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 슬픔을 마음으로 담아서 쓴 노래입니다. 기쁨의 노래가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슬픈 마음을 담은 노래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앗수르의  시대가 종결되고 바벨론이라는 강력한 나라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시작되어지는 데, 예루살렘이 기원전 586년에 멸망당하는 모습을 보며 슬퍼하는 선지자의 노래입니다. 한 때 그통록 영광스러웠던 예루살렘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된 이유가 뭐가라는 의문속에서 매일을 눈물로 지새운 선지자 예레미야의 눈물로 쓰여진 본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바라는 것은 현재의 폐허된 그 모습을 보면서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통해서 이 나라가 회복될 것을 희망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은혜를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파괴된 유다

   유다가 파괴되어진 상황을 나타내주는 부분이 11절이하의 내용입니다. 보십시오. 그들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합니까? "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먹이는 아이들이 성읍 거리에 혼미함이로다"(11절) 눈물의 선지자로 불리우는 예례미야는 그의 사랑하는 민족이 멸망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이 짓무를 정도로 매일을 울고 또 울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슬프면 매일을 눈물로 지새웠겠습니까? 또 창자가 끓었다는 것입니다. 극심한 근심으로 인해서 또는 슬픔으로 인해서 애간장이 다 녹아내렸다는 것입니다. 간이 녹아서 땅에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굶어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어미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전쟁의 참상이 그대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난 남유다의 모습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준엄하심이 들어나는 장면입니다. 탄식과 눈물만이 있는 그들의 참상을 선지자의 눈으로 바라보다 보니 얼마나 가슴이 무너지는 슬픔이 그에게 찾아왔는지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거리에는 집잃고 가족을 잃은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이 넘쳐나고, 그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줄수 없는 연약한 부모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찌 예레미야의 눈에서 눈물이 마를 수 있겠습니까? 그 파괴됨의 크기가 마치 바다의 넓은 같이 크다고 말합니다.(13절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그 파괴됨의 정도가 너무나 심하기에 누구도 그것을 치유하고 고칠수 없다고 말합니다. 재기 불능의 절망에 빠져있는 유다의 참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절망속에 빠져있음을 나타냅니다. 거기에 원수의 조롱까지 겹치는 설상가상의 난재에 무딫힌 남유다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행여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도 유다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은 없습니까? 그래서 절망하거나 슬픔속에 빠져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현 모습은 어떻습니까? 희망이 별로 없어보입니다. 절망이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파괴된 유다와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에게는 아니 오늘을 사는 유다인 우리에게는 우리의 공동체에는 어떠한 희망도 업는 것일까요?

 

2. 주를 향하여 부르짖으십시오.

   주를 향하여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그냥 부르짖는 것이 아닙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또한 참된 마음으로 기도드려야 합니다. 헛된 소리로 아무곳을 향해서나 부르짖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향방있는 싸움을 사우라고 말합니다. 그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향방이 있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예레미야 3:24절에서도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분을 향해서 우리의 입을 열어 크게 소리쳐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외쳐야 합니다. 시편기자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그렇습니다. 우리의 도움은 세상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앗수르나 바벨론과같은 강대국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요. 많은 물질이나, 힘센 권력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지식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닙니다. 유한한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도우실 분은 한 분이신 하나님께로서 온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시편기자의 말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 보겠습니다 .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 42:8)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할 때만 우리는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 하나님을 향하여서 우리의 마음을 토하듯 모든 사정을 아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감추지 말고 털어 놓으십시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예레미야 애가 2:19)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남김없이 쏟아 놓으십시오. 주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기도를 비유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차와 같고, 우리의 기도는 철도와 같다."

 

   그렇습니다. 기차는 어디든 갈 수 있으습니다. 그러나 철도가 놓여진 곳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기차의 능력은 매우 커서 동서남북을 다 갈 수 있지만 오직 철로가 깔린 곳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는 분이 아니지만 사람의 기도를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기차가 달릴 수 있는 하나니의 철로가 될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특별히 여신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가 여러분이 속한 기관뿐 아니라 공동체와 나라와 민족을 일으킵니다. 아니 그 철로를 타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주님을 향하여 여러분의 손을 들고, 여러분의 입술을 열어 기도하십시오.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예레미야애가 3:41) 즉 손들고 마음을 바쳐서(열고)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자는 것입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19下)

 

    그렇습니다. 전쟁에 생명을 잃어가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시겠습니까? 교회를 부흥을 위해서, 여신도의 부흥과 회복을 위해서, 성도들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헌신의 제목입니다. 여러분이 헌신해야 할 부분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한 가지 만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우리에게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주님께 손을 들고 기도하십시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

  

 

3.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십시오.(18절)

 

   "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흘릴지어다" 예레미야는 유다, 특별히 예루살렘을 향하여서 눈물의 기도를 드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물에는 '아픔과 사랑'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함께 아파한다는 것이며, 그것과 동시에 사랑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망해가는 자신의 나라를 보며, 배고파 죽어가는 어린 영혼들을 보며 슬퍼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한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나라와 백성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까? 교회의 문제를 아파하며, 여신도의 문제를 아파하며, 같은 교우의 아픔을 얼마나 공감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우리의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어떤 분은 지식도, 지혜도, 권력도, 돈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눈물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눈물을 강물처럼 흘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눈물을 교회를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여러분이 속한 그 공동체를 위해서 이웃과 함께 신앙을 펼쳐가는 동역자들을 위해서 흘려주십시오. 그 눈물이 우리 주님을 감동시켜서 우리를 향해 역사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내가 한 번, 하느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기도를 청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려야 되는지요. 한 개의 빵, 육신을 눕힐 수 있는 자리, 한 조각 몸에 걸칠 옷을 나보다 더 궁핍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을 수 있도록 그런 마음의 자유를 어떻게 하면 누릴 수가 있을까요. 우주여행이 실현되는 인류의 찬란한 꿈이 21세기 앞에 펼쳐져 있지만 아직 거리엔 한 개의 빵을 구걸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병고의 신음을 토해내며 죽음 앞에, 절망의 벼랑 끝에 서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아픈 신음을, 고통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하얀 손수건이 될 수는 없을까요. 과학 문명의 음지에서 생명 그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편의 시보다 따스한 손을 잡아 주길 원하오니, 그가 가난하다면 그 가난을 내게 주시고, 그가 병자라면 그 병을 나에게 주십시오. 만약 나병 환자에게 입맞추면 그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만 있다면 그들을 위해 열심히 즐겁게 입맞추겠습니다. 내 영혼을 불태워 한줄기 빛을 만들어 그들의 절망을 밝히는 위로의 불빛이 될 수만 있다면 내 육신을 활활 불태우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응답 받을 수 있는 참다운 기도가 될까요. 어떻게 하면 절망의 어둠을 밝히는 노래가 될까요. 어떻게 하면 굶주린 자들을 위한 한 방울의 시원한 물이 될까요. 나의 기도는 목이 마르고 응답에 가슴이 탑니다. 타오르는 촛불의 그 맑은 눈물을 제게 주십시오. 노벨 평화상보다 목마르지 않는 눈물을 주십시오. 그 눈물로 하여금 고통받는 자들의 마음을 씻어 주는 샘이 되게 하십시오. 그래서 말씀의 샘, 은총의 샘이 넘쳐서 언제나 제 기도가 목마르지 않게 해주소서.........." -테레사 수녀님의 기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그렇습니다. 선지자의 눈물은 유다가 회복되는 역사를 낳았습니다. 1907년 평안에서 흘린 성도들의 기도는 교회의 부흥을 낳았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병자들을 고치셨고, 그들의 생명을 살렸으며, 우리의 삶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눈물은 그저 흘러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씨앗이 되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신도 여러분, 여러분의 한 방울, 한 방울의 눈물이 모여서 교회를 일으키는 힘이 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모여서 여신도를 일으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모여서 생명을 일으키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도성 시온의 성벽아, 큰소리로('그들의 마음이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님께 부르짖어라.

    밤낮으로 눈물을 강물처럼 흘려라. 쉬지 말고 울부짖어라.

    네 눈에서 눈물이 그치게 하지 말아라. 

    온 밤 내내 시간을 알릴 때마다 일어나 부르짖어라.

    물을 쏟아 놓듯, 주님 앞에 네 마음을 쏟아 놓아라.

    거리 어귀어귀에서, 굶주려 쓰러진 네 아이들을 살려 달라고,

    그분에게 손을 들어 빌어라"(예레미야애가 2:18-19, 공동번역개정판)

 

   일회적인 일로서의 기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기도와 눈물의 헌신을 결단하는 기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헌신은 바로 그 기도의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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