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12-22
요단 동쪽 땅을 어느 지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까?
본문은 지난주에 이어서 가나안 동쪽지역을 정복하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헤스본왕과 그의 백성들을 정복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더 북쪽으로 이동하여 바산지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산왕 옥과 그의 민족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산왕 옥은 그 기골이 장대한 거인의로서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 강대한 백성들을 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취한 땅을 르으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세 지파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요단 동편을 정복했을 때 르우벤과 갓 자손은 모세에게 와서 자기들에게 그 곳의 땅을 분배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에게는 가축떼가 심히 많았는데, 그곳이 가축이 있기에 적당한 곳이었으므로 그들은 모세에게 가서 담대하게 땅을 분배해 줄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의 요구에는 믿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여러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렇게 땅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정복은 성취될 것이며, 그 땅을 각 지파가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의 기자의 말대로 그들에게는 믿음의 눈이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불신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르우벤과 갓이 믿음으로 주님의 약속을 받아들인 것과 같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은 우리는 승리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므낫세 지파에게도 땅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땅없이 살아온 이스라엘에게 큰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물(은사, 은혜)을 하신 것입니다. 유목생활에서 이제 농경사회로 바뀌어가는 시기의 이들에게 땅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최고의 재산이었으며 땅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생명과도 같은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각 지파의 규모에 맞게 주신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허락하십니다. 각자의 능력에 맞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사와 직분을 허락하셔서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 일하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은 무엇이었습니까?
헤스본과 바산을 물리치고 얻은 요단 동편의 지역은 곧바로 르우벤과 갓과 므나세반지판에게 분배되었습니다. 르우벤 지파는 헤스본 왕국의 남쪽 반을, 갓 지파는 북쪽반을 차지했으며 므낫세 반 지파는 옥의 왕국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땅을 분배받은 뒤에도 그곳에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들에게 아직도 주어져야 할 땅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사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혼자만의 기쁨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공동체가 그러한 일들로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형제에와 민족의 공동체성을 간직하도록 돕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나만 구원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우리의 공동체를 무력화시키고, 공동체의 일치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큰 사명을 허락하셨습니다. 바로 서쪽지역을 점령하는 가장 선봉에 그들을 서도록 한 것입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임을 잊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들은 가난안지역이 완전히 정복될 때까지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가장 앞에서는 은사와 직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기적인 삶으로부터 그들을 지키시며,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사명이 그들에게는 가나안의 서쪽 땅을 정복하여 그들의 형제자매들과 나누어 행복한 삶을 함께 누리는 것이요. 오늘을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난한자, 헐벗은 자, 병든자, 희망을 잃은자 등 소자로불리우는 우리의 형제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나누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사명의 가장 선봉에 서게 하십니다. 선봉에 선다는 것은 생명을 각오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죽을 수 있는 자리요. 헌신의 자리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통해서 누군가를 지켜야만 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기업을 허락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먼저 기업(하나님의 나라)을 얻고 우리의 이웃과 형제들에게도 그 기업을 함께 나누는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신명기 3장 20절은 말합니다. :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같이 너희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 저편(서쪽)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땅을 얻어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하고"
그들은 왜 두려움 없이 싸울수 있습니까?
모세는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18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 즉") 이 전쟁은 민족과 민족의 싸움이지만 그들의 군사력과 강력함과는 별개의 문제임이 드러납니다.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전쟁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바른 관계를 유지해 갈 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힘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싸운다. 나와 싸우고 세상과 싸우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도 싸운다. 그 싸움은 정말 치열하다. 꼭 거쳐야만하는 싸움을 우리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곳을 지나야만하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좋은 직장을 위해서, 좋은 학교를 위해서, 좋은 삶을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싸운다. 특별히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해준 땅을 얻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상대는 버겁다. 그들은 기골이 장대한 자들이며, 그들은 강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싸운다. 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신명기서는 그 누군가가 바로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운다는 것이다. 왜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는 것일까? 왜냐하면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차지하도록 기업으로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싸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우리와 함께 함이요. 그가 우리의 앞에 있음을 의미하며, 그도 우리의 역사 가운데 존재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역사 현실 속에서 우리와 함께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삶은 전쟁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뿐 아니라 과거의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옥이라는 왕을 넘어서야만 그들은 가나안 즉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for 위하여 :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온 우주의 하나님이신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싸운다. 전쟁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그가 싸운다. 전능자라고 불리운 그가 싸운다. 이 전쟁은 큰 아낙자손과 싸우는 것이기에 두려운 전쟁이다. 그들은 강력하다. 그래서 더욱 불안한 전쟁이다. 우리는 절대 승리할 수 없을 것 같은 장벽에 부디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를 위해서 싸우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이제 이 싸움은 싸우나 마나한 싱거운 싸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자, 가장 민첩한자, 가장 두려운 자가 우리의 신이 되어 우리의 장수가 되어 우리의 앞에서 싸우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그 의미가 적어진 것이지만, 예전의 싸움을 생각하면 각 나라에서 가장 싸움 잘하는 사람이 맨 선두에 서서 강력한 카리스마로 전쟁을하면 병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마치 자신들이 장군이 된 듯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 장군에서 밀리게 되면 그들은 힘잃은 자들처럼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기에 바쁜것이다. 그런데 그들 앞에 강력한 지도권을 가진 야훼가 등장하여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를 두둔하는 부모처럼 우리들을 이끄시며 우리의 산성과 방패가 되어주시며 피할 곳이 되어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친히 싸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싸우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영적인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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