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신명기 2:24-37
이스라엘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혹독한 대가를 치루게 된다. 본문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1장 후반부와 2장 23절까지의 내용에서 그들이 겪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순간의 그릇된 선택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약속되었던 미래를 상실하게 된다. 신명기 기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경솔했기에(신 1:41-"너희가 각각 병기를 띠고 경솔히(조심성없이) 산지로 올라갈 때에...")그렇습니다. 그들의 경솔함, 조심성없는 행동으로 많은 사람이 죽게된 것입니다. 그것은 또 한번 그의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행동있던 것입니다.
2. 듣지않아서(신 1:43-"...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듣는 것은 속히하고 말하는 것은 더디하라는 말씀도 있는 것처럼 듣는다는 것은 신중하다는 것을 말하며, 조언을 들음으로 지혜를 얻는다는 것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싸움이기에 좋은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함에도 그들은 듣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3. 명을 거역하고 천자히(제맘대로 함불로하며 꺼림이 없음) 행했기 때문 (신 1:43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고 천자히 산지로 올라가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마음대로 일을 해나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섬리를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자신들의 계획과 삶에 따라 살아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뜻과 계획에 하나님을 끼워 마추려 한 것입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그들 앞에 놓여진 가나안을 그들의 목전에 두고 그들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게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도 유지할 수 없고 죽게 되었습니다. (신 2:14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중에서 다 멸절되었으니") 또한 그들은 38년동안 배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신 2: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 팔년 동안이라...")불순종으로 인한 그들의 손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은 언제 땅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33절-34절)
본문은 고난과 배회의 38년을 끝마치고 드디어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세렛시내를 건너는 장면에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그동안 그들의 형통을 막으셨던 것을 푸시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에게 복을 얻을 수 있는 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당시에 땅없이 유랑하던 이스라엘에게 땅을 갖는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들에게 정착할 곳이 생긴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한 발을 더 내딛는 장면인 것입니다.
땅을 차지하는 과정과 더불어서 땅을 차지하는 시기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명료하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2장에서 이야기 되어지는 것입니다. 33절을 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붙이시매(넘겨주실 때)..." 그렇습니다.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실 때 가능하다고 밝힙니다. 모든 것에는 기한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땅을 차지하는 것에도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한 때를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인가를 주더라도 아무때나 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 받을 준비가 된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단단하고 질긴 음식을 주게 되념 아이들은 이내 뱉어내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요,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삶의 복을 받을 준비가 된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에게 땅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요? 불순종한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시간은 무려 38년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그들이 불순종, 즉 그들의 마음대로 행동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를 바꾸는데 소요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평균적으로 아주 사소한 습관 하나를 고치는 데도 21일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의 세대가 가기까지 즉 그들의 불순종의 습관을 버리기까지 부정적인 사고의 습관을 버리기까지 38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것입니다. 그 시간동안 이스라엘은 어려움도 많이 겪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싸움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을 더욱 철저히 의지하는 방법을 배워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순간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들이 충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연습(광야훈련)을 경험한 후에 비로소 그들은 일어설 수 있었으며, 회복되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그 땅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된 것입니다.
2. 우리가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37절)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차지 할 수 있지만 차지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며,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이스라엘에게도 그러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신 곳, 얍봅 강가와, 모압지방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이라는 것입니다. 기업으로 주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 자자손손에게 물려주도록 허락하신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에 그들은 그것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분으로 그들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곳은 우리에게 허락된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순한 것으로 우리를 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과감히 포기할 줄을 아는 삶이 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훈련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을 변개하시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행한 시험을 다시한번 확인 하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과거의 그들의 교만한 모습을 다시한번 확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너희에게 허락되지 않았으니 올라가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한 확인이며, 그 때의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장면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그들에게 다시한번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 시켜 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그 시험에 합격한 것입니다.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으로보면 이렇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 말라고 하신 곳은, 어느 곳에도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37절)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랑하는 방법은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지켜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 나가는 것입니다. 38년전의 그들이었다면 그들은 또 하나님의 약속을 어겼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할 때 가고,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말씀하실 때 전진하는 교만과 어리석음을 보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그들의 모습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혹독한 훈련속에서 새로운 신앙인의 모습을 획득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복을 얻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24절)
24절을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공동번역>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일어나 떠나라. 아르논 개울을 건너라. 보라. 헤스본 왕 아모리인 시혼과 그의 땅을 내가 너희의 손에 붙였다. 하나씩 점령해 가거라. 성가시게 하여 싸움을 걸어라."
<표준새번역개역판>
"너는 일어나서 떠나거라. 그리고 아르논 개울을 건너라. 보아라, 내가 아모리 사람 헤스본 왕 시혼과 그의 땅을 너희의 손에 넘겼으니(붙이다), 싸워서 차지하여라.(얻으라,개역)"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허락해 주셔도, 우리의 싸움이 없으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시며, 기뻐하십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서 용기를 북돋워주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그 명령은 바로 일어나 떠나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 두려움의 현장으로부터, 과거의 죄된 삶으로부터 이제는 일어나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곳에 머물러 있어서는 우리가 받을 은혜를 누릴 수 없기에 그곳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르논(급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개울(골짜기,개역)을 건너야 합니다. 이곳은 모압과 아모리의 경계선이었습니다. 이곳을 넘어야만 그들은 희망의 땅으로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곳을 통치하는 헤스본왕 시혼이라고하는 장벽을 넘어서 희망의 땅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곳은 우리에게 허락된 곳이요. 우리에게 붙이신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이곳을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에게 어려움이 찾아오면, 그 어려움을 건넌후에 만날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 앉고 맙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건넌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24절에서는 더 극적으로 하나씩 점령하라고, 싸워서 차지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신앙의 길은 단순히 쉬어가는 곳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선하신 길로 한 걸음 더 옮기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선한 싸움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 길은 평탄치 못합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그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며, 그분을 붙들고 싸워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진정한 무기가 되어주십니다. 또한 겟세마네의 동산에서 눈물의 기도를 통해 영적인 싸움을 싸우신 주님처럼 날마다 무릎으로 싸워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시련을 믿음으로 이겨 나가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에게 아름다운 땅(복)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25절의 말씀처럼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으로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인하여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과거의 이스라엘은 세상에 대하여 두려워했지만 오늘과 미래의 이스라엘은 예수그리스도의 군사들로 믿음의 싸움을 싸우기에 그들과 함께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세상이 그를 두려워하며 떨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선한 싸움, 믿음의 싸움을 싸워 이기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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