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7:1-12 (참고 사도행전 3:1-10, 마가복음 1:29-39)
들어가는 말
무더운 날씨가 연일 계속되는데 건강에 늘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햇볕 아래에서는 단 몇분만에도 옷이 젖을 정도로 땀이 흐르고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무더운 날씨가 있었을까? 할정도의 살인적인 더위가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기후변화를 통한 기후 위기라는 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지구의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에어컨을 틀어야 하고, 화석 연료를 사용함으로 더욱더 위기가 가중 되어가는 현상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제도 장로님들께서 교회를 청소해 주셨는데요. 땀을 뻘뻘 흘리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기도 하고 옆에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향해 주시는 말씀을 통해 오늘도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부터
본문은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상이 나옵니다. 새로운 성전에서는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1-5절).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을 천 척마다 측량을 하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천 척'은 대략 500m정도가 됩니다. 에스겔이 500m를 갔더니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고, 또 500m를 갔더니 무릎까지, 그리고 500m를 더 갔더니 허리까지, 그리고 또다시 500m를 갔던니 물이 가득 찼습니다. 이러한 환상을 에스겔은 보았습니다. 이 환상은 새로운 성전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여 점점 물이 차올라 처음에는 발목->무릎->허리->결국은 가득차서 헤엄을 쳐야 할 만큼 물이 불어났습니다. 마지막 수위는 인간의 의지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주도권을 내려놓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47장에서 말하는 '물'은 성전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뜻합니다. 생수가 흘러나와서 차고도 넘친다는 것은 생수의 강이 충만한 상태 곧 '성령의 충만한 상태'입니다.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렘 17:13)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환상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8-12절) 8절은 물이 흐르는 방향을 보여주는데요. 물이 동쪽 아라바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동쪽 아라바는 사해를 가리킵니다. 사해는 남북 방향으로 67km에 걸쳐있는 완전히 폐쇄된 바다입니다. 동서로는 18km에 이릅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의 국경과 접하고 있습니다. 사해는 염도가 매우 높습니다. 사해는 사막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강우량이 적고 불규칙합니다. 사해의 짠물은 밀도가 높아 사람의 몸이 위로 쉽게 떠오릅니다. 고농도의 염분 때문에 세균을 제외하고는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합니다. 지중해 바닷물 1리터당 소금 함유량은 37그람이지만, 사해 바닷물의 소금 함유량은 275그람이나 됩니다. 사해의 소금 함유량이 높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해는 닫힌 바다에 속합니다. 요르단 강으로 물이 유입되는 갈릴리 호수와 반대로 사해는 다른 곳으로 흐르지 못합니다. 두 번째 이유로 더운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연중 25~40도에 이르는 더위로 인해 물의 상당수가 증발해버립니다. 홍수가 일어났을 때 요르단 강이나 작은 하천을 통해 유입된 물고기들도 이곳에서는 금방 죽고 맙니다. 즉 죽은 장소와 마찬가지인 곳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사해로 들어가서 죽음의 바다를 살립니다. 생명수가 이르는 곳에서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처럼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한느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마가복음 1:34, 39)
물은 왜 동쪽(사해)으로 흘러내렸는가?
성전으로부터 나온 물이 흘러내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첫째는 치료함이 일어납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동방으로 흘렀습니다. 아라바로 내려가 바다에 이르게 됩니다. 바닷물도 이 물로 인해서 되살아나리라고 하십니다. 둘째로 물은 생명체가 살도록 합니다. 물이 있는 곳에 많은 고기들과 모든 생물이 살게 됩니다. 엔게디에서 에네그라임까지 그물치는 곳이 될 것입니다. 10절의 '큰 바다'는 '지중해'를 가라킵니다. 곧 지중해에 있는 많은 물고기와 같이 사해에도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들이 몰려 들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성전에서 나오는 생명수가 사해로 흘러 들어가서 죽은 바다를 소생시켜 각종 생명체들이 살아나게 함으로 지중해와 같이 많은 물고기들로 가득차게 됩니다. 그래서 그 곳에 어부가 와서 물고기를 잡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11절을 보면 사해의 늪과 웅덩이 물은 되살아나지 않은 채, 소금을 얻을 수 있도록 남아있다고 합니다. 사해는 거대한 소금 매장지로도 유명합니다. 소금은 희생제물을 포함한 음식을 보관하거나 양념을 하는 데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소금을 얻을 수 있는 늪과 웅덩이 물은 그대로 남겨둘 것이라고 합니다. 12절에서 먹는 실과와 약 재료는 하나님의 축복을 묘사합니다. 그런데 왜 '생명수는 동쪽으로 흐르고, 왜 사해로 흘러가는 걸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 '사해'(약 해발 -450m), 즉 '죽음의 바다'입니다.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해가 동쪽에, 성전은 서쪽에 있기에 물이 동쪽으로 흐른 것입니다. 죽음의 바다에 생명수가 들어가서 그 바다를 소생시킵니다.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바꾸는 것입니다. 죽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이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받아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성령의 생수를 교회가 받아 살아나고, 목회자와 성도가 살아나서 그 충만함으로 세상에 나아가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려야 합니다.
나가는 말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이 생명체가 살지 않던 사해를 살려서 지중해와 같이 풍성하게 변화시킨 것처럼, 죽어가는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 오늘 교회가 해야 할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전환하는 일은 교회에 맡겨진 사명입니다. 37장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신 것처럼 모든 불가능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만나야 할 분은 성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사도행전의 미문에 앉았던 구걸하던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성전으로부터 흐른 물을 통해 죽은 바다가 살아나고 물이 이르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열매를 맺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처럼 우리도 참 생명의 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이러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 역시도 같은 답을 하고 있습니다. 열병으로 죽어가던 베드로의 장모 역시 예수님을 만나고 그녀가 생명을 회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막 1:31) 그 예수님의 몸된 교회로서 우리 교회 안에도 예수님으로 충만하여 져서 이러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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