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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은 정결로부터

꿈지기의사랑 2024. 3. 24. 01:01

레위기 7:11-21( 20240317)

 

들어가는 말

 

   매주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았으면 삶의 현장에서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성령의 역사 속에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죄를 멀리하고 성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속건제의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로서 살아가는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속에서 믿음의 실천을 행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화목제의 규례에 대해 함께 묵상하면서 화목하려면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대가 없는 용서는 없습니다.

 

   화목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화목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점을 시사해 줍니다. 화목은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화목은 희생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도 바로 이런 원리 때문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드리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가끔 우리가 이해하는 복음은 희생 없는 용서 또는 대가 없는 용서로 복음을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오해하겠습니까? 인간이 받은 용서와 배려의 대가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희생의 대가의 크기를 정확히 그리고 완벽히 이해하는 인간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과 동일하게 살 수 없습니다. 단지, 부족하지만, 예수님처럼 살아가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도 이처럼 대가가 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도 반드시 희생이 요구됩니다. 대가 없는 용서와 화목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일상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기 잘못을 인격적으로 알고 뉘우치고 깨닫는 교정과 성화의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은 값질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화목함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기쁨은 모를 수 있습니다.

 

은혜를 살피고 나누며 삽시다

 

   12절에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화목제 희생을 드릴 때는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 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감사 희생과 함께 드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감사하므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여러 가지 은혜를 감사해서 드리는 감사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런 감사의 화목제가 끝난 후에는 제물 중에서 제사장의 몫을 제외한 나머지로 제사를 드린 사람 뿐만 아니라 친지를 비롯한 이웃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혼자만 잘 먹고 잘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돌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그것의 소유자, 권력자, 계급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그 은혜를 나눌 청지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현재 내가 가진 권력, 계급, 서열들이 있다면 복음적으로 지혜롭게 쓰시기 바랍니다.

14절을 보면 감사의 화목제를 드릴 때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하나님께 거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화목제 예물을 제사장이 하나하나 일일이 들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많은 예물을 일일이 하나씩 들고 감사를 드리는 것은 매우 귀찮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제단 위에 있는 예물을 한꺼번에 놓고 감사를 드리면 더욱더 효율적이고 편리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굳이 이렇게 명하신 것은 특별한 뜻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부른 찬송가 429장은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라는 구절이 들어 있는 찬송가입니다. 그 받은 복을 세어 볼 때,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라고 이어 나옵니다. 죄의 습성을 가진 우리 모두는 불평,불만,원망 등을 세어볼 때가 많지만, 은혜 가운데 주님께서 주신 복들을 우리의 인생에서 잘 살펴보며 감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화목하려면 정결해야 합니다.

 

   19절을 보면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깨끗한 자만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부정한 자가 먹으면 곧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심각한 죄를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깨끗한 자만이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서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한 깨끗한 자라는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벽히 행하고 지킨 자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합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죄 사함을 받은 자를 성경은 깨끗한 자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자복하는 사람이 깨끗함을 입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 임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십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감을 입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의 죄를 잠시 가리는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그 피의 공로로 씻을 수 없는 우리의 죄가 가려지고 씻어지는 것입니다. 결코 쉽고 간단한 과정이라고 성경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너무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고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보혈의 능력이 죄 씻는 유일한 길이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21절은 부정한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제물을 먹는 자들에게는 더 가혹한 처벌이 주어진다고 증거합니다. 이렇게 강한 경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함부로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때론 신앙생활에서 찾아오는 익숙함과 반복은 우리가 죄에 쉽게 빠지게 합니다. 한없이 내려지는 죄 사함의 은혜와 한없는 자비로 내려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맛보고 경험할 때, 이러한 은혜와 사랑 때문에 감격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이 정말 쉽게 용서받을 수 있어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가 많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령 죽으리라 하셨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먹어버린 사건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법 중, 하지 말라고 하시며,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신 것이 아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주신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이 아침 깨달아야 할 부분입니다.

 

나가는 말

 

   죄로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화목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의 거룩함 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화목제를 위해 희생한 제물의 피를 통해 우리는 정결함을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우리의 삶에서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한일서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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