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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증인으로 부른 받은 사람들

꿈지기의사랑 2023. 4. 23. 10:02

요한복음 20:19-31(참고 이사야 43:8-13, 사도행전 10:34-43)

 

들어가는 말

 

   지난 주에는 야외예배를 다녀왔습니다. 좋은 날씨라 생각하는 순간 날씨가 변해서 비가 오고, 비가 오는가 싶더니 또 해가 뜨고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건강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나들이여서 강바람도 쏘이고, 비를 맞으며 깡통 열차도 타고, 맛있는 밥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해주신 성도님들과 준비하느라 수고해주신 장로님들고 여신도회원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은 다음에 꼭 같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리에게 남는 것은 두려움 뿐입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어떤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이후에 그들은 그곳에 숨이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의 상태를 성경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19절) 지난 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의 마음에는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으로 인한 두려움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악쓰던 그들로 인해 예수님이 처참히 죽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들은 유대인들과 마주치면 자신들도 죽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즉 그들 안에 있어야할 평강이 사라져버린 상태인 것입니다. 자신들의 꿈고 소망의 원천이었던 예수께서 유대인들에 의해 고발 되고 이방인의 손에 이끌려 십자가에 못박히던 그 장면에 이들의 마음은 잠식당한 것입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소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던 가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제 유대인들만 봐도 경기가 일어날 지경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병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릅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외상적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그 사건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 이후 계속적이고 지속적이고 그 장면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러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예수님은 평강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은 두려운 마음이 아닌데, 우리는 연약하기에 작은 것에도 무너지고 마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충격, 자신들의 인생을 걸었던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그들의 평강(평화)는 무너져 내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상태를 성경은 두려움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은 평강이십니까? 우리의 모습과 제자들이 모습은 다를까요? 아니요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물가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국제정세는 불안하고, 남북 관계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불안정합니다.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건사고, 화재 등과 같은 불안한 일들이 우리의 마음을 뒤 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삶의 상태는 제자들이 지금 겪고 있는 두려움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우리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감정적인 제어나 인지능력이 저하되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주는 정보를 인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제자들 중에 가장 크게 겪은 사람이 도마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다른 제자들은 특별히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니 제자들이 평강을 회복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20절) 그러나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도마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왔다가셨다는 이야기만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25절) 그러나 그는 믿지 못했습니다. 아니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사야의 말처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사 43:8)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 모습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실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두려움을 이기게 하는 이름 : 주님에 대한 고백

 

   이사야서 43장에서 하나님은 열방이 회집된 법정에서 열방 중 어느 누가 이전에 이 구속에 관한 일을 고한 자가 있느냐 물으십니다. 그런자가 있으면 증인을 세워서 자신의 옳음을 증명해 보라 하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미리 고한 자가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증인을 세워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종으로 삼은 이유는 주인을 바로 알고 깨닫고 섬기게 하기 위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이 열방을 향하여 증인의 역할을 함으로써 종의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앞서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선언합니다. 이것은 출애굽 때 하나님이 구원에 앞서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선언하신 것과 같습니다.('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출 6:2)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미리 예고하셨고, 이제 구속을 이루시는 것은 오직 자신, 즉 여호와 자신임을 강조하십니다. 천하에 이런 일을 행할 다른 신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증인이 됩니다.('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2절)

  이름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대답을 원한다면 다음과 같다.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이나 사물, 단체, 현상 등에 붙여서 부르는 기호.'이다하늘은 녹(祿)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름이의 의미는 다름 아닌 존재 가치나 의의(意義)를 뜻한다. 이름이 주어짐으로써 사물은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고, 의미를 얻게 됨으로써 존재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민들레나 개나리가 우리들에게서 구체적인 이름을 얻고 있는데, 길섶에 있는 풀들은 구체적인 이름을 얻지 못하고 그냥 잡초라고 불리고 있다그것은 잡초는 잡초로서 우리 인간에게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민들레나 개나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냥 민들레면 민들레지 그것들 하나하나에 따로 붙여진 이름이 없다. 그냥 돌멩이면 돌멩이고, 바위면 바위지 그 이상의 다른 이름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건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특정한 의미를 지니게 되면 이름을 얻게 된다.(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다시 만난 예수님의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본 후에야 도마는 그분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8절) 예수님에 대한 고백, 다시말해 예수님의 이름이 도마에게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이제 그에게 자신 안에 있는 두려움, 모든 공포를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에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자신들만이 선민이라는 어리석음에 빠져,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믿었던 유대인 베드로에서 성령을 통해 거듭남을 경험한후 이방인에게도, 아니 세상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사도행전 10:34-35의 고백입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사명으로 부름받은 자로서, 특별히 부활의 증인으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부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오신 주님은 22-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바람, 생명의 숨으로 우리에게 오신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르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성령과 함께 할 때 어둠이 떠나가고 눌린 모든 것들이 고침받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증언합니다. 그 성령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시작된 생명의 바람, 생명의 숨의 역사가 이제 우리를 통해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와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증은으로서 부르신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이사야 43:10, 12), 베드로도 같은 말을 합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것이라"(행 10:39-41), 요한도 같은 말을 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31절)

 

나가는 말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 절망과 낙담속에 있는 인생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이시며,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시고, 그 이름을 힘입어,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증인으로 부르셨음을 기억하며, 부활의 증인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일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부르심을 통해 부활의 증인 되었음을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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