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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

꿈지기의사랑 2023. 4. 16. 08:14

누가복음 24:13-35(참고 스바냐 3:14-20; 베드로전서 1:3-12)

 

들어가는 말

 

   4월은 참 아픈 달인 것 같습니다. 4.16일은 세월호 사건이 있은지 9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9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면서 희생자 유족들과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 다시는 이런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제발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오늘은 이승만정권의 4.15부정선거에 항의하다가 마산에서 최루탄을 맞아 죽은 남원 금지면 출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혀 있는 처참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이후 전국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분노하며 이승만 정부의 퇴진을 외치며 일어난 4.19 혁명은 186명의 사망자와 6,026명의 부상자를 내는 큰 희생을 치르고 이승만 정권의 종식을 이뤄냈습니다. 4.19혁명 63주년을 맞으며 다시금 그날 희생된 민주 열사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정의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지켜야한다는 책임을 되새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장애인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널리 퍼져있는 장애인 차별과 불이익을 주는 사회구조를 변화시켜 장애인들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많은 배려를 해야 합니다.장애인들에 대한 더욱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역사를 보는 우리의 눈이 밝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절망은 우리의 눈을 가린다.

 

   우리가 절망하는 것은 언제일까요? "눈이 가리워졌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나온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눈이 가리워졌다"는 문장은 성경에서 나오는 문장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제자들 중 일부가 엠마오로 가면서 예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이 부활하신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슬퍼하고 낙담한 상태였습니다. 무언가를 보고 싶은데 그것을 볼 수 없거나 이해하지 못할 때 "눈이 가리워졌다"고 표현합니다.무언가를 보고 싶은데 그것을 볼 수 없거나 이해하지 못할 때 "눈이 가리워졌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눈이 가리워졌다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말처럼 예수가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19절)이고,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21절)던 그들의 바람이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무너지고 그로 인해서 이들이 절망에 빠지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절망감은 삶의 목적을 잃거나 삶에 대한 희망을 잃는 것이기에 그들의 말처럼 그것을 잃어버린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 이스라엘이 로마의 폭력과 압제로부터 해방될 것이고, 다윗왕조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에서 그와 함께 새로운 왕국을 이루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는 소망이 무너졌기에 그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로 인해서 글로바와 다른 제자는 그들의 소망의 상징인 예루살렘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들이 가고 있는 엠마오라는 곳의 의미가 온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절망과 실의에 빠진 그들이 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면서 심신을 달래려고 했던 것일까요. 정확한 것은 기록이 없기에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깊은 상심과 슬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안식일이 끝나고 아침에 여자들이 가져온 부활 소식에 한바탕 소동이 났지만, 변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모여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흩어졌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절망한 사람들입니다. 죽음을 끝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죽음 앞에서 절망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동행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15절). 그들의 영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6절). 그들의 꿈과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기대할 수 없다면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았던 사실은 기억하면서도 귀로 들었던 말씀, 곧 부활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18-20절). 여인들이 부활의 소식을 전했을 때에도 주님의 말씀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아들 부활, 회당장 야이로 딸의 부활, 나사로의 부활은 상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22-24절). 절망이 우리의 눈을 가린다면 우리 역시도 온전히 삶을 바라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그들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자신들의 고정된 시선으로 인해 정작 보아야 할 예수를 볼 수 있는 눈이 가리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안다는 것으로, 자신들이 보았다는 것으로 인해서 정작 보아야 할, 함께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처럼, 고난과 절망에 사로잡혀, 죽음과 슬픔에 사로잡혀 부활의 첫열매되신, 생명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더디 믿는 자들이여 : 믿음의 문제

 

   이처럼 눈이 가려진 우리를 향해 주님은 오늘도 외치고 계십니다. '미련한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지막 테스트와 같은 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고난입니다. 죽음입니다. 그 테스트를 넘어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예수께서 그들을 구원할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었다면, 그것이 그들의 소망이었다면 그들은 포기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이 되어도 흔들리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로만 알았기에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안 것을 믿지못했기에 절망과 좌절로 가득차게 된 것입니다. 고난이 시간이 이었었다면 영광의 시간이 도래할 것에 대해 믿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몰랐던 것을 예수님께 다시 듣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실들을 다시  회상함으로 예수님을 깨닫게 됩니다. '이에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27절) 말씀을 듣는 내내 그들은 잃어버렸던 희망과 소망을회복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못 믿어워하던 예수님과의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말씀을 들으면 들을 수록 그들은 예수님께 더욱더 빠져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에 잃어버렸던 꿈, 잃어버렸던 소망, 그들이 꿈꾸던 세상에 대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 로마의 압제로 잃어버렸던 것들을 주님과 함께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라던 꿈, 모두가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될 거라던 꿈 그들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바라보며 절망하고, 낙담하여 잃어버린 그 꿈들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스바냐 선지자의 외침처럼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스바냐 3:16-19)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절망하여 늘어뜨려진 그들의 손을 잡아 올리시며 주님은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절망이, 죽음이, 고난이 우리가 걸어갈 길의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길로 달려가던 그들을 향해 주님은 그 걸음을 멈추라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사탄은 우리를 향해 속삭입니다. 그것이 끝이라고, 이제는 이곳을 떠나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향해 그 절망에 허덕이며 손을 늘어뜨리는 삶으로부터 멈추라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으로 가르치셨고,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 그들에게 산에서, 그리고 마지막 식사를 하시며 보여주셨던 것처럼 떡을 가지고 축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심으로 그들의 가리웠던 눈-절망과 낙담으로, 인생의 고단함으로, 소망을 잃어버림으로, 주님을 놓침으로-이 밝아지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갑시다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습니다. 3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보이고 안보이고는 이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이 있고, 그분의 가르침을 믿게 된 그들에게 더 이상 예수님은 그들과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유업을 이은자로서 다시 일어서제 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베드로전서 1:3-4) 예수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실망하고, 소망을 잃어버리고 그래서 그들의 꿈도 약속도 모두 팽개치고 예루살렘을 떠났던 그들에게 변화는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6-9) 예수님은 더이상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으셨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을 경험한 그들은 더이상 소망없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과 함께 이루려던 그 꿈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일꾼으로서 다시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그 순간, 주님과 함께 떡을 떼던 그 순간 그들의 눈은 밝아졌고, 새로워 진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32절) 부활의 소식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잃어버렸던 것들을 회복하게 합니다. 용기를 줍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곳은 이제 소망의 땅이 아닌 절망의 땅, 죽음의 땅이라 여기며 떠나왔던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갈 용기를 줍니다. 움츠리고 숨어지내는 삶이 아닌 당당하게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가게 합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오늘도 우리가 절망하며, 손을 늘어뜨리고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소망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를 향햐 그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와 동행하심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케 하시는 주님의 손을 잡고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 부정과 부패를 넘어, 부활의 생명을 주신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증거자들을 통해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증언한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증언되었습니다.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 1:12) 이제는 우리가 그 자리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33-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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