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8:1-8
들어가는 말
우리의 모습과 태도를 보며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변화됩니다. 바울은 온 마음과 진심을 다한 경책의 편지를 썼고 그것을 기쁨으로 받고 깨달은 고린도의 성도들은 회개하였고, 그들과 함께 하던 목회자 디도에게 겸손히 사랑의 교제로서 대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었으며 바울에게 마음껏 역량을 펼치는 목회를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소망하며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하나님의 섬겨갈 때 선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돈에 대한 설교나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항상 조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오늘은 연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연보 자체보다는 연보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자세를 함께 나누며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은혜를 알 때
우리가 드리는 연보 헌금의 본래적인 모습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한 없고 값없는 은혜를 깨달을 때 일 것입니다. 성도들은 주님께 속하였기에 많은 순간 세상의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그들에게 찾아온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행해 자신의 힘 닿는 대로, 자원하는 마음을 통해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환난의 많은 시련’할 때 ‘많은’으로 번역된 헬라어 ‘폴레’(πολλῇ)는 ‘많다’, ‘크다’란 뜻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극한 가난’이라고 할 때 ‘극한’으로 번역된 ‘바두스’(βάθους)는 ‘깊다’, ‘높다’라는 의미를 가진 명사입니다. 그러니까 심히 물질적으로 어렵고, 육체적으로도 심히 많은 고통과 시련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며, 그런 가운데서 행한 연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물질이 남거나 풍부해서 연보를 드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은혜를 알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마음을 연보(헌금)를 통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드린 때 힘 닿는대로 자원하는 마음, 기쁨으로 드리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고린도후서 8:2-3)
나눔의 표현으로써 연보(헌금)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연보(헌금)는 나눔과 섬김이라는 두 가지의 측면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나누어 주실 때 기적이 일어나고 생명의 운동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 가운데서도 나눔이 일어나야 합니다. 때로는 물질을 나누고 때로는 시간과 봉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날마다의 삶에서 섬김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자신을 드렸다고 말합니다. 즉 자신들의 삶을 드린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라고 함은, 저들이 하나님께 이처럼 연보를 하였던 근본적 동기를 밝혀주는 말입니다. 즉 이미 마게도냐 성도들은 자신들을 하나님께 다 드린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러기에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헌신할 수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봉사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따라 봉사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를 따라서 봉사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필요를 따라하는 봉사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봉사에는 근원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따르게 된다면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필요하면 봉사가 이루어지겠지만 그 필요가 사라지게 되면그는 더 이상 봉사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봉사라면 나에게 유익이 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 증거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목적이 있기에 그 봉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행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위해서 연보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했기에 고난 중에도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 줄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의 진실을 증명하는 연보
교회는 바로 사랑의 나눔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연보를 택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연보(헌금)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우리의 입술의 말을 우리의 삶으로 표면화 시키는 행위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인색함이 아니라 넉넉한 사랑의 마음을 통해서 연보(헌금)함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된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은혜받은 자로서의 특권이며 성도를 섬기는 일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작정하였으나 아마도 연보하는 일을 미루고 머뭇거렸던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들이 열심을 회복하여서 사랑의 실천을 행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고린도후서 8:6-8)
나가는 말
이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이러한 사랑이 드러나는 삶이 늘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였습니다. 우리의 사랑의 확증은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삶의 나눔인 것은 기억하십시오. 연보(헌금)는 그 삶의 일부이며 은혜받은 성도로서의 특권임을 기억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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