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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아버지께서

꿈지기의사랑 2022. 9. 25. 11:58

너희아버지께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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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2:22-34(신명기 30:1-5; 골로새서 1:3-14)

 

들어가는 말

 

날씨가 제법 쌀쌀해 진 것 같습니다. 건강유의하시고 이 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 우리의 삶에 평강으로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요즘 많이 들리는 것이 한숨 소리인 것 같습니다. 정치를 보며 한 숨, 경제의 상황을 보며 한 숨, 태풍이 지나가며 한 숨, 우리의 주변이 한 숨으로 가득찬 것처럼 보여집니다.

 

~하지 않을까?(fear)

 

염려에 대해서 영어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던중 정말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번역이 너무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말을 참 많이 쓰고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해 보았습니다. "~하지 않을까?" 증후군. 본문을 잘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 속에서 우리의 이러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주님은 우리가 ~하지 않을까 증후군에 걸린 것을 알고 있으셨습니다. 우리의 걱정은 어떻습니까? 학생을 둔 가정에서는 좋은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까?,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결혼할 수 있을까? 잘 살 수 있을까?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병에 걸리지 않을까? 사고나지 않을까? 농사가 잘 되어질까? 수매는 잘 할 수 있을까? 고구마를 제 값에 팔 수 있을까? 올해를 넘길 수 있을까? 우리의 말속에 이미 이러한 생각과 정신이 가득넘쳐 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염려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오슬로 대학의 Teigen. K.H가 어떨 때 한숨을 쉬는가에 대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심리학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리서치에서 자신이 내쉬는 한숨의 의미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한숨은 의사통의 영역보다 혼자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지각했습니다. 이 때 한숨을 '포기'의 의미로 여기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무료함, 그리, 피곤함 순으로 나타났다자신의 한숨은 '포기와 좌절감'으로 인식하지만 타인의 한숨은 '슬픔'으로 지각한다."고 말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염려중 대부분은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않은 앞으로 되어질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염려 증후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함으로써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우리의 정신을 해치고, 우리의 영을 해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잠언서 기자는 이러한 우리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22)

   사랑하는 여러분 일어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일어나고 걱정하고 근심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는 그러한 것들에 우리의 시간과 마음과 생각을 빼앗길 시간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의 능력으로 될 수 없는 것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비생산적인 일입니다.

 

불신앙에서 오는 염려

 

   우리의 염려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지는 것일까요? 땅에 것에만 집중하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우리는 염려에 빠지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하지 않을까? 먹는 것, 입는 것, 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근심하고 걱정하며 염려속에 빠져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무슨 마음일까요?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해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온 우주 자연 만물을 창조하시고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역시도 먹이고 입히실 것임을 믿지 못하여서 그것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으로 인해 하늘의 소망을 잊어버리고 오늘도 탁식의 눈물과 한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자들아"

    (28)

 

  즉 우리의 염려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 믿음없음의 표현이라는 것이 분명해 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나의 모습속에 염려과 근심과 걱정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근심케하는 모습은 없습니까? 우리의 염려가 불신앙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이어서 그것이 왜 불신앙인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라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29-30)

 

   이러한 염려는 세상의 사람들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것에 매여 사는 것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태도이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적인 모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거나 앞으로 하면 되거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것으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소한 육체의 일을 가지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주시기를 기뻐하심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지 못하고, 그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 이심을 잊은채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절망과 눈물 속에서 살아가며 한 숨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 배후를 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30)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소망을 그분에게 두어야 합니다. 들의 풀마저도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기쁨으로 더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늘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은 더 나아가서 이 땅에서의 사소한 것들에 목숨걸고 염려하지 말고 정작 중요한 것에 우리의 생명을 걸고, 마음을 두고, 우리의 힘을 쏟고 그것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인생, 하나님을 찾는 인생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땅에 두면 우리의 마음은 사단에게 도적질 당하여 늘 불안하고 두렵고, ~하지 않을까하는 염려속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둔다면 이 땅의 것들은 들풀을 먹이시고, 공중의 새를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 우리의 염려를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면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을, 믿음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나가는 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께 집중하며 살아갈 때, 세상에서 필요한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심을 잊지 않고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의 보물은 어디에 쌓여가고 있습니까? 아니 여러분의 보물 창고는 땅입니까? 하늘입니까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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