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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견디는 자가 됩시다

꿈지기의사랑 2022. 7. 18. 00:19

마가복음 13:1-13(참고 암 5:18~24, 2:8~11)

 

들어가는 말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상황이 변화무쌍하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날씨, 정치, 질병의 상황 등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황스럽기까지 할 때가 있습니다. 매일 같은 날들이 반복되어 가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조금씩 변해가는 것들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성령강림절을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여섯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무더위인가 싶은데, 어제와 다르게 찬바람이 느껴지는 것은 저의 기분 탓일까요? 계절의 변화도 끝까지 견디면 어느새 평안과 기쁨을 회복할 수 있다면 믿음의 세계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귀한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동상이몽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과 예수님이 그런 모습인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모습과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나도 다른 것을 바라봅니다.

먼저 제자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성전을 나서면서 성전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저것 보십시오. 저 돌이며 건물이며 얼마나 웅장하고 볼 만합니까?"(공동번역개정, 13:1) 제자들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단지 현재의 성전의 아름다움에만 매료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그저 외형이 어떻게 생겼고,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한가에만 눈이 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모습은 종말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단지 현재적인 것에만 눈을 두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각은 좀 달랐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의가 떠나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있자면 눈물이 먼저 앞을 가리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야할 길이 훤히 보이셨기에 목이 메셨던 것을 봅니다. "지금은 저 웅장한 건물들이 보이겠지만 그러나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공동번역개정, 13:2)

   주님은 하나님의 의가 떠난 이 성전을 향해서 "강도의 소굴"(11:17)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웅장함을 볼 때 그들에게 찾아올 아픔을 보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이로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의 황제 띠뚜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화재로 인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게 되었는데, 예루살렘 성전의 지붕은 황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황금이 열에 의해서 녹아내려 담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이 황금을 꺼내기 위해서 돌을 하나하나 해체해서 돌 위에 돌이 하나도 올려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님은 세상적인 가치만을 바라보고 사는 우리, 종말에 대해 무감각한 우리를 향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징조들

 

   복음은 본질적으로 불의와 거짓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속에 속한 사람들을 긴장하게 합니다. 그래서 민족이 민족을, 가족이 가족을 향해 대항하여 불화가 일어납니다. 복음의 편에서서 박해를 받을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지진과 기근과 같은 자연재앙까지 겹쳐서 삶을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러한 일들은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더믹을 통해서 세상에서 고립된 교회를 발견합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어려움에 빠진 이 시대에 교회가 온전히 교회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세상의 질타를 받고, 수많은 영혼들이 교회를 등지고 떠나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했지 않습니까? 그때에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다'(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가짜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단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며 교회의 자리를 그들이 차지하려 하는 모습들이 보여지고 있음에 가슴이 무너저 내립니다. 즉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일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최근 우리의 주변 정세를 통해서도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각처에서 민족간의 분쟁이 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이러한 맥락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또 각처에서 기후변화로 생겨나는 해일과 지진, 기근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로 믿음이 길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흔들리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13:33) 이러한 경고들은 구약성경 아모스서에도 나타납니다. 여로보암 2세 때 이스라엘은 죄악과 불의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강대국 앗수르의 발흥으로 그 주변나라들이 압박을 받으면서 오히려 이스라엘은 국력을 강화했고 빼앗겼던 땅을 되찾아 넓혔습니다. 죄악과 불의에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곧 온 땅에 이스라엘의 번영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마침내 여호와의 날이 이를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오히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될 것이며, 빛없는 어둠이요 사자는 피했으나 곰을 만나고, 환난을 피해 집에 들어가 벽에 손을 댔으나 뱀에게 물리는 날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18-20) 지금 정치적, 경제적 번성 오히려 큰 재앙이요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번성함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대로 살고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흐르는(24)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국교회는 코로나 시국에 들어서면서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래 없는 세상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 조차 포기해야 할까요?

 

끝까지 견디는 자가 되라 : 준비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알고 있는 일이라도 실제적으로 해보지 않는다면 실제 상황에서는 당황해서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이, 군인들이 반복적인 동작을 훈련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로서 우리도 최종목적지인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실천을 해야 합니다. 매일이 실전처럼 연습해야 합니다. 전도도, 복음 증거도 막힘없이 하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실천해야 합니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갈 때입니다. 이 종말의 시기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 증거하려는 우리를 가로막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는 길을 가려쳐 줍니다. 그것은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종말은 우리가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이기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종말을 향해서 우리의 마음이 두렵고 떨릴 때 우리는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사랑의 증거들을 쌓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성령을 의지하면 우리에게 믿음과 지혜와 힘을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말씀을 통해서 깨어있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21:19)

 

나가는 말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살악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교회가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하지 못함으로 인해 세상의 비난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기회 삼아야 합니다. 더욱더 말씀으로 돌아가고,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시금 회복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치장을 내려놓고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지금의 상황을 돌아보고 인내하며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운동중에서 가장 힘든 운동이 기본기 운동입니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힘든 운동입니다. 교회가 바로 이러한 모습으로 인내함으로 회복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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