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지기의생각나누기

꿈지기의 생각을 함께 나누어 보아요

목회와 일상의 대화

오후찬양예배설교

신광야의 시험1 : 하나님의 시험과 목적

꿈지기의사랑 2021. 7. 31. 23:53

출애굽기 16:1-4

 

들어가는 말

 

   죽음과 파멸의 인생을 천국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마라와 같은 쓴 인생의 순간들을 견디고 난 후 그들은 엘림의 풍성함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마라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가르치신 나무를 경험하고 단물로 변화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한 우리는 죄된 과거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백성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쁨과 은혜를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늘 고난의 순간이 지나고나면 우리의 태도는 돌변해서 원망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엘림을 나와 신광야에 도착한 이스라엘의 원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왜 이런 원망하는 삶을 살게 되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신광야로 : 원망의 원인1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알때

 

   마라에서 시험을 거친 후에 모세는 백성을 데리고 엘림으로 나아갑니다. 이어서 신광야로 들어갑니다. 거기에서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게 됩니다. 수르 광야에서는 물이 없어서 고생했지만 신광야에서는 빵이 없는 굶주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애굽을 탈출하기는 했지만 급하게 나오는 통에 온 백성이 광야에서 먹을 양식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남으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다"(출 12:39) 1절에 의하면, 백성이 신광야에 이른 때는 둘째 달 15일입니다. 민수기 33:6에 의하면 백성이 라암셋을 출발한 날짜는 첫째달 15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라암셋에서 신광야까지 꼬박 한 달이 걸린 것입니다. 애굽에서 탈출할 때 경황이 없어서 누룩으로 띄우지 못한 밀가루 반죽으로 옷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나왔습니다(무교병).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그 반죽을 가지고 '무교병을 구워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쓴물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마라와 그 물을 대신한 풍성한 물이 있는 엘림을 겨쳐서 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아시스 엘림에서 천막을 걷어서 길을 떠나 행진하다가 지금 신광야로 오게 되었습니다. 엘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누릴 수 없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시편 23편의 노래처럼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가와 같은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문제는 바로 그러한 은혜의 순간들이 주어졌을 때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될 때 그들은 곧 신광야를 경험하고 배고픔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시험 : 원망의 원인2 하나님의 훈련에 대한 오해

 

   하나님의 구원 다음에는 훈련의 과정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훈련은 괴롭고 힘겹습니다. 훈련에는 고난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러한 훈련과 고난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억압에서 해방되었으니 곧바로 평안과 번영과 행복이 올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오산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물질의 번영과 육신의 안일함을 행복의 조건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3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훈련의 과정은 달랐습니다. 백성을 이끌어내어 물도 없고, 건조하며 전갈과 불뱀이 우굴거리는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6)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연단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계약을 맺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죽을 만큼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면 누구인들 고통을 호소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광야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요! 그러나 고통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도자를 원망하며 그 책임을 지도자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문제 삼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애굽기 16:2-3) 모세와 아론이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영재목사는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공동체에 위기가 닥쳤을 때 축제를 벌이면서 구성원 중에 약한 자를 골라서 희생제물로 바치고 이윽고 그를 신격화하였던 고대의 관심이 이 본문의 원망 주제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약자 중 누군가를 선택해 그들을 공격하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타자를 원망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부르짖는 기도의 훈련에 늘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과 목적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시험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양식 제공에는 전제가 따릅니다. 일용할 양식만을 거둘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매일 일용할 양식만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이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시험을 보는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시험을 보는 것은 그동안 배운 것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익혀서 잘 알고 있는지를 확인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 양식을 주시며 그들을 시험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설명하시는데, '나의 가르침대로 사는지 살지 않는지'를 확인하시는 것이 목적이라 하십니다.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6절) 여기서 중요한 말이 준행하다 입니다. 이 '준행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할라크/הָלַךְ'입니다. '걷다/가다'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토라(말씀)대로 사는가를 보시겠다합니다. 즉 '나의 가르침 대로 생활하는지의 여부를'시험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말씀을 실천하는지 않는지시험하려고 매일 만나를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주십니다. 광야는 시험과 연단의 장소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날마다 광야를 통과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매일의 양식으로 기쁘고 감사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나가는 말

 

  하나님의 가르침은 두 가지를 이야기 해줍니다. 하나는 하늘에서 주시는 것으로 양식을 삼을 것과 또 하나는 이틀분 양식을 비축하지 말고 하루분 양식으로 족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내일을 위해서 물질을 쌓아두면 그 물질에 의존하고 사로잡혀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아닙니다. 물질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일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애굽이라는 세상을 떠나 물질만능주의적 삶에서 벗어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물질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자유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