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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소명2-내가 누구지요?

꿈지기의사랑 2021. 7. 2. 20:37

출애굽기 3:6-12

 

   6절은 하나님을 이야기 하면서 조상의 하나님(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고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이영재목사는 ‘엘 샤다이’로 불리운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설명하는 상투적인 표현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이어질 땅 점령 이야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왜 전능한 분이라면 택한 백성에게 군왕들의 것을 빼앗아 넘겨주지 않으셨나? 모세로 하여금 파로오의 권력을 가지고 황제가 되지 않았는지 묻는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하나님은 땅을 빼앗지도 않으시고 혁명을 일으키지도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변하기를 원하신다. 폭력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속 사람이 변화되어야 하며 그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모든 죄인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힌다. 그이 말에 따르면 ‘변화 받은 사람이 변화 받지 못한 모든 사람에게 복을 끼치게 되는 법’이라는 것이다.

   죄 많은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두려워 얼굴을 가리게 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름심(소명)은 우리의 대단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모세의 모습처럼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 조차 자유롭지 못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감찰하시는 하나님-보고 듣고 알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으로부터 멀리 계신 분이실까? 출애굽기 3장의 소명부분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고통을 보시고(라아),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쉐마), 그들의 근심을 아셨다(야다) 그들의 상황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그들의 고통의 현장으로 내려오신다. 애굽의 압제하는 폭력적 손길로부터 그들을 건저 내려하신다. 그들을 인도하여 약속한 땅-좋고 아름다운 땅-으로 친히 데려가시겠다는 결단을 하신 것이다. 이것이 모세를 부르신 목적이다. 우리의 삶과 무관하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너무나 잘 아시고, 우리의 삶 속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들에게 약속한 땅은 가나안 부족들(죄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모세가 가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9절)

 

   9절은 ‘이제 가라’로 시작하지만 정작 원문에는 가라는 표현은 없다. 그냥 ‘이제 보라’(וְעַתָּ֕ה הִנֵּ֛ה/와아타 힌네)라고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보라는 말은 영어로 behold(~을 보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 단어에서 be는 '존재하다, 있다'는 의미이고, hold '잡다'라는 의미입니다. '무엇인가를 잡은 상태를 유지하고 다른 어디에 가지 않고 지키고 있다' 시선을 고정하고 어떤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기에 본다는 뜻을 가진다는 것이다. 뒤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의 억압으로 인해서 고통당하며 신음하는 이스라엘의 고통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이 아닐까! 이영재 목사에 따르면 ‘죄인들이 폭력으로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 폭력에 고통당하는 수많은 정치적 억압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아브라함은 ‘만민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호칭이다. ’ 즉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는 혈연이나 지연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세가 바라보아야 하는 대상은 하나님을 향해 그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호소하는 모든 이들인 것이다. 아니 오늘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그들이라는 것이 출애굽기의 이야기이다. 우리를 그 소명의 현장으로 부르신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신 주님,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소명-모세는 무엇을 위해서 가야 했나?(10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맹위를 떨치던 바로에게 그를 보내십니다. 당대의 최강의 국가의 최고의 권력자,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왕, 재력까지 모두갖춘 이에게 도망자요 일개 촌부로 전락해버린 모세를 하나님은 보내고 계신 것입니다. 그에게 가라(לְכָ֔ה/러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웃의 사정을 알고, 그들의 아픔을 알았다면 그 다음으로 부름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가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합니다. (וְהוֹצֵ֛א אֶת־עַמִּ֥י/워 호체 알 암미) ‘내 백성을 건져내어라/이끌어내라’(공동번역 개정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내려는 것이 아니라 모세에게 명하여 파견했으니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내가 누구지요?

 

   최고의 권력자에 비해, 도망자요, 미디안의 양치는 목부에 불과한 제가 상대가 될까요? 움츠러든 모세를 만나게 됩니다. 소명에 대한 인식은 커녕 그의 모습 속에는 믿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배신당한자, 살인자, 도망자-마치 들의 풀처럼 연약한 모습으로 그는 오늘도 자신의 연약함, 무능력함, 꿈과 희망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움추린 자화상(낮은 자존감)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커다란 움추림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자신이 혼자의 힘으로는 대제국을 맞서 싸우며 그 제국을 지배하는 바로의 권력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음이 자명하다는 인식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럴 수 없노라고 내가 누구인지 아시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을 창조주요,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신 분(조상의 하나님-엘 샤다이)로 믿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또한 신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소명자를 향한 하나님의 한 가지 약속-함께하심(12절)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모세는 완곡히 거절합니다. 그러한 모세를 향해 하나님은 약속을 다짐해 주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כִּֽי-אֶֽהְיֶ֣ה עִמָּ֔ךְ / 키 에흐에 임마크)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셨다는 ‘증거’(הָא֔וֹת/하오트)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증거’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모세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함께하시겠다는 그 약속을 믿음 때 그는 사명의 현장으로 나아가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마침내 애굽을 탈출하고 하나님의 산(호렙)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능력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좌절할 수 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