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15-31
들어가는 말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그리고 총회에서 지키는 도시농어촌 선교주일입니다. 그리고 이틀 전에는 보리가 익어가고 모내기철로 접어든다는 소만(小滿)절기의 계절을 보냈습니다. 우리 속담에 “터를 닦아야 집을 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준비 작업이 있어야만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절, 도시농어촌 선교주일, 소만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잘 지켜서 거룩하고 은혜로운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우리의 현실은 무겁기만 합니다. 코로나19도 이어지고 있고, 기후위기와 더불어 경제적 어려움도 계속 커져가는 상황입니다.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서 우리가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즐거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이나 우리에게 올 수 있는 걸까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계명 : 생명과 평화
오늘 본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그의 애제자들을 모아놓고 주시는 마지막 말씀, 사실상 유언장을 발표하시는 장면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곧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그 절박함 중에 말씀하십니다.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약속장’으로 유명합니다. 예루살렘 입성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먼저는 천국 거처를 준비하고 다시 올 것을 약속하십니다(요 14:1-4). 둘째 주님께서 길과 진리, 참 생명이심을 밝히십니다(요 14:5-15). 셋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요 14:16-26). 그리고 마지막 넷째는 하늘의 평안을 약속하십니다(요 14:27-31).
본문에서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계명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21절에서도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3절에서도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우리는 모두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계명도 지켜야 합니다. 주님의 계명은 무엇일까요? 오늘 읽으신 본문 앞뒤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앞쪽부터 보면 같은 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뒤쪽으로보면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하셨습니다. 이 두 말씀을 모으면 바로 27절 말씀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공동번역]로 정리가 됩니다. 즉 예수님의 계명과 교훈은 바로 ‘생명’과 ‘평화’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생명과 평화를 따르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게 될 때 주님은 우리를 고아로 내버려 두시지 않고 당신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이루게 해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계명을 처음 받은 사람들은 교회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이 계명이 먼저 실현되어야 하는 곳은 교회현장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감추고 싶어 할 정도로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말이 떠돌고 있기까지 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의 본질 : 계명의 실천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5:20-21) 이것은 성령 충만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아니 성령 세례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보여줍니다. 바로 계명 준수입니다. 따라서 제자인 유다가 묻습니다.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 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요 15:22-23)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을 지키고 실천하는데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거처를 마련해 주십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자신의 ‘말(말씀)’에 관해 이야기하십니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5:24-26) 성령께서 임하시면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불의한 세상에서도, 주의 성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 세상에서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요 15:27-28)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바로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쫓는 일입니다.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 까닭은 정의도 사라지고 상식조차도 무너진 악한 세상을 바라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회도, 삶도, 말씀도 무너진 세상을 탄식하시며 제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도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지금 사회적 분위기에 짓눌려서 있어서만은 안 됩니다.
일어나 여기를 떠나자 : 농민기본소득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걸어가신 길의 의미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이야기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제자들이 그것을 믿고 자신이 걸어간 길을 이어주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명하신대로 행하시며 제자들도 그 길을 걷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도 그리 걸어야 함을 요청하십니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31절) 예수께서는 성령을 우리에게 파견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26절]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일과 사람을 죽이는 일을 구분할 뿐만 아니라 참과 거짓을 구별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참 좋으신 성령이 우리 곁에 머물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을 이해할 수 있고 그 길을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농촌의 현실은 암울 합니다. 농업의 가치는 추락하고 농민의 권리도 상실되어갑니다.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 곧 사라질 지방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형국입니다. 농민기본소득은 그동안 무시되고 깨닫지 못하던 농업의 가치, 농민의 권리를 반영하여 보편적 소득을 지급하는 것입니다. 농민기본소득은 시들어가는 농업농촌을 살리는 길입니다. 고령화로 꺼져가는 농촌에 다시 불씨를 살리기 위해 젊은이들이 돌아오게 하는 대안운동입니다. 생태적 농업을 복원하고 신음하는 우리 땅과 물, 그리고 공기를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요즘 일손구하기가 얼마나 힘이 듭니까? 농촌에 일자리를 만들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이루기 위해 앞장서는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 육성하는 방법입니다.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촉구하고 독려해야 합니다. 농민기본소득 실현을 위해 법적제도를 설치하거나 신기술 개발 등을 통해서만 농촌이 잘살고, 안전한 나라와 행복한 세상인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생명과 평화의 감수성이 충만할 때 가능하게 됩니다.
나가는 말
성령강림은 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언약과 계명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말로 선포되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으로 선포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령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 힘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 힘들 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용기를 주십니다. 주님과 함께 일어나 성령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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