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1-11
들어가는 말
오늘은 부활절 마지막 주일인 일곱째주일입니다. 동시에 5·18민주화운동기념주일이기도 합니다.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반란을 일으키고 전국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것에 반대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5월 18일-27일까지 10일간)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넘어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 젊은이가 꿈을 꾸는 세상, 노년이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법은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언론은 가볍지 않되, 펜의 진실에 기초하여 사실에 기초한 보도로 다시금 신뢰를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종교도 그 성스러움을 회복하여 현재 온 세계가 당면한 코로나의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을 산다는 것은 저마다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대한 판단은 후대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후 신군부와 관변 언론 등에 의해 '광주소요사태' 또는 '광주사태' 등으로 보도되면서 일반화되었습니다. 이는 광주 자유 민주화 항쟁을 "불순분자들이 체제 전복을 기도한 사태"로 왜곡한 신군부의 주장에 근거한 호칭으로 제5공화국 기간 내내 사용됐으며, 현재는 당시 호칭에 익숙한 노년층이나 신군부를 지지하는 일부 극우 인사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88년 노태우 정권하에서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고, 그 후에 민주화 투쟁으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화운동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역사에서 그 사건을 재조명하고 평가하면서 그 의미를 새로이 해석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평가가 새로워짐에 따라서 새로운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대학생들의 시위에서 광주시민과 전남시민이 함께하는 시위로 확산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민과 신군부간의 충돌이 있긴했지만 시위대가 민간인을 향해 행한 폭력이 없었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는 약 200여 명이고 부상자 등 피해자는 약 4,300여 명입니다. 광주광역시가 2009년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29주년을 맞아 당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을 집계한 결과, 사망자가 163명, 행방불명자가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이 101명, 부상자가 3,139명, 구속 및 구금 등의 기타 피해자 1,589명, 아직 연고가 확인되지 않아 묘비명도 없이 묻혀 있는 희생자 5명 등 총 5,189명으로 확인됐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과 민중의 의지를 대내외에 드러내었고 반민주, 군사독재의 야만성을 세계에 폭로함으로써 군사독재체제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으며,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들의 항쟁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으며,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정작 그 일의 주도자인 전두환씨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은 우리 주님의 대제사장적 중보기도입니다. 본문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 믿는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예수님께서 당신의 중보기도로 잘 가르쳐 주십니다.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예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는 간청 기도가 나오고, 둘째는 제자들이 하나가 될 것을 간구하는 기도, 셋째 제자들에게 거룩하게 살도록 요청하시는 기도, 마지막으로 성도들의 연합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셨습니다. 이 중보기도 후에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데리고 온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지원해준 사람들에 의해 잡혀가십니다(요 18:3). 오늘 본문 말씀은 중보기도 두 번째까지 말씀입니다. 곧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는 기도와 제자들의 하나 됨에 관한 기도입니다. (1-2절) 아들이 영화롭게 되어야만 모든 사람에게 영생이 주어집니다. 곧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이유는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하는 말씀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 바로 영광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영광’으로, 또한 오늘 본문에 ‘영화’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독사’(δόξα)는 ‘~처럼 보이다, 간주되다’라는 뜻의 ‘도케오’(δοκέω)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따라서 ‘독사’의 원래 뜻은 ‘의견, 판단, 견해’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상징적인 측면에서 ‘거룩, 위엄, 찬양, 경배’라는 의미로 그 뜻이 확장이 됩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는 성경에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상태, 가장 고귀한 상태’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쉽게 말해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이 가장 고귀한 상태로 찬양과 경배를 받을 만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 영생의 비밀이 됩니다. 따라서 영생의 의미가 새롭게 이해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영생은 먼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또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처럼 살고 예수처럼 죽어야 부활하고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실하고 치열한 십자가의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실천으로 고백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바로 영생의 비밀입니다.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
예수께서는 다시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4-5절)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 일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삶을 살았으니, 다시 부활하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곧 가장 고귀한 상태로 아버지 하나님과 더불어 예수님도 찬양과 경배를 받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 성도들의 영원한 찬양과 경배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신 후에 이제 창세 전에 계셨던 ‘말씀(로고스)’이신 주님의 간절한 두 번째 기도가 이어집니다. 그 핵심은 바로 우리(제자들)를 위한 기도입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 17:6-8) 이렇게 예수를 알고 믿는 자들을 위해 주님은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 17:9-10)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들을 통해 예수께서 영광을 받는다고 합니다. 찬양과 경배를 받는다는 말씀이죠?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부활승천하시어 아버지께로 가고 믿는 자들만 이 세상에 남아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따라서 믿는 자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한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곧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험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화목을 통해 하나되라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편지를 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8-19)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직분의 의미는 세상을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우리 믿는 이들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죄를 세상에 돌리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통해 세상이 구원받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화목의 조건이 나옵니다. 화목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0-21) 비록 부족하여 넘어지고 쓰러지지만, 하나님만을 꽉 붙들고 화목의 직분을 받아, 그 직분대로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화목의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5·18 광주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제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영성 회복을 위해 세상과 교회의 화목을 위해 일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제국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거두실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피조물이 구원받기 위해 우리에게 화목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최병학목사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30년 후 이렇게 기억되길 원한다 이야기 합니다.
“2020년을 기점으로 한국 개신교회는 몇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기존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맹신주의, 교권주의를 벗어나 사회의 질적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선교’로 관점을 전환하였으며, 교회 내적으로는 질적 성장을 추구, 비록 교세는 위축되었지만,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질적으로 변화하여 개신교의 이미지가 변하기 시작하였으며 서구 신학과 미국 기독교 문화를 추종하던 시대를 지나 토착화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며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코로나의 위기가 가져온 어두움을 성령의 빛으로 극복하였다.”
나가는 말
그렇습니다. 30년 후에 오늘 2021년을 바라볼 때 이렇게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또한 한국교회를 이렇게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아직 30년이 남았습니다. 만약 그때까지 예수님께서 세상 제국을 심판하러 재림하시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화목의 직분을 잘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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