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지기의생각나누기

꿈지기의 생각을 함께 나누어 보아요

목회와 일상의 대화

오후찬양예배설교

할례와 아론을 만남

꿈지기의사랑 2020. 12. 20. 14:09

출애굽기 4:24-31

 

모세를 죽이려는 하나님 이를 막는 십보라- 할례

 

   모세는 장인의 허락을 받고 아내 십보라와 아들들과 함께 애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갑자기 그를 만나 죽이려 하신다. 왜 하나님은 그를 죽이려고 하신 것일까?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만났다고 할 때 '파가쉬'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이 말은 '바카쉬'(찾다/구하다/탐구하다)라는 단어에서 왔다. 즉 그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신 것이 아니라 만나려는 목적으로 나오는 행위를 가리킨다. 주께서 모세를 죽일 작정을 하시고 그를 만나러 오신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성경은 할례 때문인 것으로 말한다.

  할례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의미하기 때문에 할례를 받아야 언약의 백성으로 자격을 갖춘다. 모세는 어린시절 할례를 받았다. 그러나 두 아들은 미디안 도피 시절에 할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모세의 처가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방인과 결혼한 모세는 도피생활 중에 히브리인의 구원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지냈기 때문이다. 십보라와 이룬 가정의 평안함 속에서 레위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 망각하고 있었다. 모세는 아들들에게 할례를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야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미디안 족장의 사위로서 만족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에 속한 일원이 되기를 포기하고 살았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동족 히브리인에게 배신을 당하였으니 동족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다 무너진 상태였을 것이다. 도망 중에 절망하였고 할례의 전통마저도 포기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피 남편-할례 받은 자

 

   마지 못해서  소명을 받아들인 모세가 겨우 순종하여 애굽으로 가는 중에 돌연 하나님께서 천막 속으로 돌진해 오셨다.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 십보라가 엉겁결에 아들의 포피를 베어 할례를 베풀었다. 아들의 포피를 '모세의 발에 대고' '이는 내 피 남편(하탄)'이라 외쳤고 하나님은 떠나갔다. 김이곤은 이에대해 아랍적인 의미를 따라 "할례받은 자"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사건으로 모세의 자녀들은 엉겁결에 할례를 받게 되었으며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모세의 가족이 모두 언약의 자녀들로 영접되었다. 모세는 아들의 할례로 인하여 비로소 십보라의 신랑으로서 주님께 인정을 받게 되었고, 십보라는 스스로 자기 아들에게 할례를 베푸는 자벌적인 행위를 통하여 비로소 모세의 신부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나님을 모르던 우상숭배자 십보라가 할례를 인정함으로써 그의 아들과 함께 비로소 이스라엘의 가문의 일원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다섯 번이니 거절하는 모세를 강권하여 애굽으로 파견하신다. 모세는 믿지 않는 불신자 아내 십보라를 데리고 애굽으로 향하고 있다. 두 아들도 할례를 베풀지 않아 이방인이나 다름이 없다. 모세가 이제 주의 구원 사역을 감당하게 된 것은 순저히 하나님의 택하여 예비하심과 부르심 덕분인 것을 본문은 이야기 한다. 

 

아론과의 만남

 

   아론은 모세를 만나자 입을 맞추었다. 아론을 모세에게 인도하여 만나게 하신 분은 야훼 하나님이셨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기 위하여 주께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셨다. 모세는 아론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한다. 주께서 말씀을 모세에게 보내셨다는 표현에는 '말씀;이 의인화 되어 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기적들'은 곧 야휍께서 모세에게 '보내셨던 모든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 말씀은 곧 이적이며 삶을 변화시키는 사건이다. 모세가 만난 야훼의 체험을 아론에게 간증함으로써 아론이 모세의 동역자로 부름을 받고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론은 모세를 도와 장로들을 소집한다. 아론의 직분은 모세의 대언자로서 백성의 장로들에게 모세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이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내포된 이적들을 백성 앞에서 행하는 역할도 수행하였다. 백성들은 이것을 믿었으며 또한 들었다. '들었다'는 동사는 '샤마'인데 듣는 것은 순종을 내포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순종하는 행위로 귀결된다. 백성이 들은 말씀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찾아오셔서 보살펴주셨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난(오니)을 보셨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사항을 아론이 장로들에게 전달했고 백성들에게 전달 되었으며 백성들은 이것을 믿은 것이다. 들음으로써 믿게 된 백성이 보인 반응은 '카다드(엎드려서 절하다)'이다. 백성이 엎드려 절하는 동작을 보였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히브리인의 고난을 보셨다는 말씀을 듣고 백성은 믿게 되었다. 믿는 자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엎드려서 절하는 겸손의 자세이며 이는 순종을 의미한다.

 

나가는 말

 

   모세와 그의 가족이 할례를 통해서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존재이다. 하나님과 맺어진 그 관계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약속을 들었다면 그것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매일의 우리의 일상이 이러한 믿음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후찬양예배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리와 사랑으로 사는 교회  (0) 2020.12.31
바로에게 말씀을 전하다  (0) 2020.12.27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0) 2020.12.13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0) 2020.12.06
능력의 삶  (0) 2020.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