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12-14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며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성경을 읽으면서 이삭이 거부가 되었다는데 그는 어떻게 거부가 되었을까?하고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성경속에서 그 해답을 하나하나 얻게 되었다. 그가 거부가 될 수 있었던 4가지 요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가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 이삭의 성공, 거부가 된 삶의 가장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중심에 계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삶이 될 때 우리는 거부도 될 수 있고 인생의 승리와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도,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안식의 복도,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의 복도, 우리의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복도, 옆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만날 수 있는 복도 모두가 하나님의 복이 아니고서는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 바로 구원의 은총의 복 역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세전부터 준비하셔서 주셨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고백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3-5)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영적. 육적인 모든 은혜는 하나님을 통하지 아니하고 주어지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여서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날마다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2)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삭이 하나님께 받은 거부가 되는 은혜의 요인은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보여드린 그의 태도에서 비롯되어집니다. 이삭이 살던 그랄 지역에는 두 번의 흉년이 있었다고 기록됩니다. 첫 흉년은 아브라함 때에 있었던 것으로 부여 집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1절) 그리고 이삭이 살던 시대에 또 다시 아브라함 때와 같은 흉년이 들었던 것이다. "또 흉년이 들매" (1절 下) 흉년이 들면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그곳을 떠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곳에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삭이 살던 시대에도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떠났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그랄을 버리고 간 곳은 물이 많고 농사짓기가 좋은 애굽땅이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2절) 요셉의 시대에도 흉년이 들었을 때 주변의 나라 사람들이 애굽으로 쌀을 얻으로 온 것을 보아도 애굽이 비옷한 땅이 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찌 되었건 많은 사람들이 애굽으로 갔다는 것은 변함없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흉년을 피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2절)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애굽은 세상을 대표하는 곳이다. 그곳으로 갔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방법과 법칙을 의지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명령이셨던 것이다. 이삭을 향한 믿음의 테스트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을 때 주어지는 복을 보여 주신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세기 26:3-4) 즉 자손의 번성, 땅의 축복, 복의 근원이 되는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본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랄에 머물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 속에서 그 해에 100배의 은혜를 입게 된 것이다. 지금 힘들고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말자 고난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자, 그 때 이삭이 백배의 은혜를 입었던 것 같이 더 큰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3) 포기하고 있다.(다투지 않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다. 좋은 일이 있으 후에 꼭 시험이 찾아온다. 우리가 믿음으로 제대로 받았는지를 살피는 것이리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여 우물 문제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이삭의 신앙인으로서의 태도가 나온다. 그는 진흙탕 싸움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판 우물이 분명하고 자신의 소유가 분명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한다. 이것이 은혜받은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은혜받았따고 말은 하면서 삶으로는 늘 내 것을 고집하는 삶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재산을 손해보고, 광야에서는 짐승을 키우거나 농사를 짓거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인 물을 포기함으로써 버린는 신앙, 십자가의 신앙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손해보는 줄 알면서도 포기할 때 하나님께서 더 풍성함으로, 더욱 만족함으로, 더 큰 은혜로 채우시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모습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그는 싸우지 않고 파고 또 파고 또 팜으로서 타툼을 피하고 상생과 화해의 길을 찾게 된 것이다. 4)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 하나의 도우심과 복을 누렸던 족장시대를 비롯한 성경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갖으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복받는 삶은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다. 이삭의 삶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의 흔적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체험한 이삭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다.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창세기 26:25) 이삭의 삶의 중심에는 늘 하나님께서 계셨다. 하나님을 은혜를 깨닫고 나서 그는 더욱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산다.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고 영광을 돌리며 예배할 줄 아는 그의 삶의 태도를 하나님께서 뻐하시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 앞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형성에 힘썼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았다.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삶을 통해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귀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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