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1:26-32
복을 말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이라는 것의 기로 앞에 설 때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순간 우리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본문에서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마치 두 가지의 길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26절)
우리는 이 곳에서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시기로 했던 약속의 땅, 바로 그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의 복을 받는 길에는 두 개의 열쇠가 있습니다. 하나는 복된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즉 복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27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복된 인생으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걷도록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칭찬과 격려를 통해서 아이들이 어떤 과업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방법을 보면 맛있는 것을 앞에 두고, 그 일을 잘하면 저 것을 주겠다고 말함으로 아이의 학습 성취력을 높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시는데,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복을 이야기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주를 말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복과 함께 저주를 선포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바라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주목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학창시절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요, 두 가지 유형의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한 선생님은 수업시간마다 저희에게 사탕을 통해서 자신의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신 반면에 한 선생님은 호통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선생님의 수업에 집중하지 않으면 큰 일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시면서 수업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왜 이러한 저주의 표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용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허탄한 것에 우리의 눈을 두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큰 사랑의 배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가까워오고 있는 그들의 삶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잊고 떠나서 살아가는 모습이 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고, 인생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이셨기에 그들에게 넘지말아야할 경계선을 그어주셔야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법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이 만들어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으로라도 보호되지 않으면 안될 것들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벌금을 메기고, 형을 정하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원하는 그 밑바닥의 의도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안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서로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그어놓은 것입니다. 그것이 법이지요.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선택하셔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저주라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복과 저주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통해서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얻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택이셨던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28절)
하나님 의도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거하도록 하신기 위함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들어갈 땅은 어떻습니까? 정해져 있습니다. 동일한 땅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복도 되고 저주도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복도 주시고, 저주도 주실 수 있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활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편에서 보자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가? 믿음이 없이 살아가는가를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은 동일합니다.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바뀌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 우리의 믿음이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믿고, 그것을 바라보고 살아갈 것인가? 그렇지 않고, 원망과 불평을 하며, 하나님 없이 살아갈 것인가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복도 되고, 저주도 되는 것입니다. 한 해를 하나님 앞에 맡기고 얼마나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따라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복된 사람과 저주와 같은 삶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기자는 모세의 이야기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브리서 11:26)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기 위해서 오시고, 우리의 질고를 지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뻐하며, 주님과 함께 고난의 순간들을 믿음으로 이김으로써 복된 삶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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