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9
하나님은 약한 사람들을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약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육체적인 약점에서부터, 감정적 약점, 영적인 약점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처지에 따른 약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한 약점에 불안해 하거나 부족함에 모든 기회나 해야할 일들을 포기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약점에 대해서 우리의 태도는 그것을 부인하거나, 방어하고, 핑계를 대고, 숨기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사용하실 기회를 박탈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른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 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시선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우리의 방법과 전혀 다른 방법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곤 합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이사야 55:9)
주님은 오히려 미련한 것들을 탱하셔서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점을 인정하는 사람 안에서 역사하심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을 사용하심을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은 유능한 사람, 잘난 사람을 사용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하면 연약한 모습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모습 그대로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바울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바울은 외형적으로 풍기는 것을 본다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의 가문, 그의 외모, 그의 학벌, 학식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습니다. 바로 육신의 연약함입니다. 완벽한 사람만을 사용하셨다면 저와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부름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함을 인정하는 우리에게 함께 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십시오. 우리의 약점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눈을 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기에 우리를 여신도라는 이름으로 부르신 것은 아니며, 회장으로, 부회장으로, 임원으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육신에, 지식에, 믿음에, 경제적인 면에 영적인 부분에 이르기 까지 우리의 약함이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은 기쁘시게 여기시고 사용하십니다. 바울도 자신의 약점, 육신의 약점, 예수를 믿는 이들을 핍박했던 부분이 있었지만 부름받고 사용하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부인함에도 회개함으로 사용되었고, 다윗도 간음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약함을 들어서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것으로 은혜가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니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거하심이라"(9절)
약함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히 하나님을 향하도록 도와줍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12:7)
기드온 역시도 미디안 족속과의 전토에서 13만 5천명을 맞아 300명의 병사만으로 싸우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약함을 도우심을 경험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약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크게 작용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우심이심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질 그릇과 같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잘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내 능력이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더욱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 중에 도우시는 주님의 손을 잡고 주신 사명 잘 감당하는 여신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