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11-19
어떤 좋은 일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고맙고 감사한 것들에 대해서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발견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돌아보면서 일상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늘 감사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시간은 누가복음의 열명의 문둥병환자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감사의 모습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둠가운데 살아가는 열 사람
오늘 본문에는 열 사람의 문둥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그들의 처지와 환경이 다른 모습가운데 살아오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몸에 문둥병이라는 병이 생김으로 인해서 인생이 어두운 터널로 빨려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먼저, 자신의 건강을 잃었습니다. 건강을 잃음으로 인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가족으로부터 격리 되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던 이들에게 문둥병은 가족을 잃게하는 아픔을 주었습니다. 가족의 사랑속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상처로 그들의 가슴에 남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사회로부터도 격리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회의 지탄의 대상들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볼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고, 그들은 사람들이 멀리서 오는 것 같으면 "부정하다. 부정하다."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외쳐야 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더러운 놈입니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그들이 격리 되었음을 말할뿐 아니라 그들의 자존감을 낮추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건 이들은 사회로부터도 격리 되었습니다. 이들은 어느 마을에서도 반겨주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경 근처에서 배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삶의 중심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잃고 주변에서, 사랑받지 못하며, 사람들에게 격리되어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절이 아닐까요? 그들은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불평과 불만과 짜증스러운 모습,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며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속에서도 그들의 이러한 속 사정이 드러납니다.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누가복음 17:12-13)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이러한 그들의 요구 때문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절) 이 말은 그들의 몸이 낫게 될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문둥병 환자가 제사장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그들의 몸이 치료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확인할 유일한 사람들(?)이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사장들에게 가다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몸이 깨끗하게 됨을 경험한 것입니다. 짓물렀던 것들이 회복되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보고 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나은 것은 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단 사람에 대해서 만큼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영광돌리며 감사하며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예화)발명왕 토마스 에디슨(Thomas A. Edison, 1848-1931)이 기차 안에서 연구를 하던 중 기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화학 약품이 든 약병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연구실이 불이 났습니다. 그 동안 연구한 내용들이 불에 탔습니다. 그리고 에디슨도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차장이 급히 달려와 에디슨을 차창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귀를 다쳐 청력을 잃었습니다. 귀머거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는 평생을 바쳐 수많은 연구를 했고 그 결과로 수많은 발명하여 발명왕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입니다.
"그것은 내 귀가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주위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나는 그 시끄러운 소리를 잘 듣지 못하니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내가 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불행을 한탄하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고 있는 모습을 에디슨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불행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악물며 그 불행을 애써 참고 견디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 불행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하여 새로운 성공으로 나아갑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의 삶이 변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그냥 가버린 9명일까요? 아니면 감사할 줄 아는 한 사람일까요?
나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감사의 반대는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감사한 줄 모르는 마음, 그것은 병든 마음입니다. 아홉사람은 육신의 병이 나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온전하지 못하며, 그들의 삶이 온전해 진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뭔가가 부족했는데, 마태복음 기자는 그것이 감사였다고 말합니다. 감사를 통해서 사마리아 사람은 더 큰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입니다. 그는 육신의 건강으로만 회복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줄 알고 살았던 바로 그가 감사를 통해서 참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음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는 영육간에 참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제 그는 사회와도, 가족과도, 자신 스스로에게도 자유자가 된 것입니다.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은혜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를 통해서 에디슨은 발명왕이 되었고, 감사를 통해서 사마리아인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감사의 조건들을 경험하고 맛보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연함은 없습니다. 감사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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