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3:1-10
새로운 눈을 떠야 해요
요나는 죽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통해서 생명의 길로 다시 한 번 생명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를 삼켰던 물고기의 뱃속에서 사흘밤낮을 지낸후에 겨우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길에서 생명을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는 맡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 생명의 호흡,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기 싫은 장소인 니느웨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기에 그랬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의 회개의 시간을 통해서 그는 새로운 삶에 대한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 속에는 니느웨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보면 니느웨는 3일을 걸어야 다 갈 수 있는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요나의 행동을 보십시오. 어땠습니까? 하루만을 돌아다니고 말았습니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요나서 3:4)
니느웨는 앗수르(앗시리아)의 수도입니다. 그들은 약한 나라에게 가차없고 무자비하게 다스리는 정책을 사용하는 나라였습니다. 요나는 이러한 악한 나라에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이 성은 한 창 번성할 때는 성벽이 12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큰 성읍이었다고 합니다. 화려하고 장대한 성인 니느웨에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고 있음을 선포하여 그들로 회개케 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눈이 열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또한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의 눈을 버리고 새로운 눈으로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미운 사람이 있지 않으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러한 사람에게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그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회개는 무척이나 중요한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한 번의 전파를 통해서 심판받을 수 밖에 없었던 느니웨성과 백성들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요나의 메시지를 들은 니느웨 백성들은 그 말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였으며, 어른부터 아이까지 굵은 베를 입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앗수르 왕에게 들리자,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왕은 대신들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마무 것도 입에 대지 말되,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 니느웨의 왕은 자신들이 이렇게 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려던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되었습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에 던져져 땅 끝까지 들어가 3 일 밤낮을 고생하던 요나는 확신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앗수르 백성들을 회개케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회개하지 않으면 자신이 바다에 빠진 것과 같이 니느웨도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적인 그의 메시지는 분명히 앗수르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요나의 메시지를 들을 때에 회개할 수 있는 심령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 민족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요나를 그들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요나가 메세지를 전할 때에 그들에게 겸비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성령의 도움 없이 이토록 철저하게 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앗수르 사람들이 그토록 완전하게 회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와 같이 회개하게 되자 그들을 심판하시려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욘 3:10)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보내십니다. 요나를 보내서 우리의 생각으로 악하다고 여긴 그들, 구원받을 수 없는 최악의 사람들이라고 여기던 그들마저도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무한 하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시대의 요나인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악한 길에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 또는 원수와 같은 이들마저도 사랑하셔서 우리를 그들에게 보내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누가복음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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