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2:1-13
만족을 모르는 욕심
욕심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 그렇습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요?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것입니다. 풍선을 불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풍선은 고무의 탄성에 의해서 불면 자 늘어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선이라고 할지라도 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풍선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바람을 불어넣고 넣고 또 넣고 계속해서 넣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성서는 욕심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욕심의 큰 특징은 만족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졌으면서도 가진 것에 대한 감사가 없고,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 이것이 욕심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바로 다윗의 이러한 탐욕스러운 면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기 위해서 그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만든 다윗의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선지자 나단을 보내서 그로 하여금 깨닫도록 만드시는 장면입니다. 나단은 다윗에게 찾아가서 부자 농부의 비유를 들어 그의 잘못을 깨닫도록 만듭니다. 양 99마리 가진 사람이 손님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것을 취하지 아니하고 이웃의 한 마리 밖에 갖지 않은 양을 빼앗아 그것으로 그 손님을 대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소유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 남의 것이 더 커보여서 그것을 꼭 차지 해야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인간의 죄악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만족을 모르는 욕심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모습 역시 다윗왕을 비웃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윗이 보여준 욕심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 이러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욕심이 낳은죄
이러한 욕심이 다윗으로 하여금 범죄하도록 인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본래 자신의 생명을 걸고 양을 지키던 목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 속에 찾아온 욕심은 그러한 다윗의 마음이 변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할 수 없도록 그를 마비시킨 것입니다. 우리아의 아내에 대한 인간적인 욕정이 그로 하여금 생명을 해하는 죄를 범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양의 비유를 듣고서 분개해서 그러한 사람은 생명에 대한 존중심도 없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없기에 죽어야 된다고 스스로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마저 빼앗아 가버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양을 사랑하고, 그 양의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사랑이 많은 목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에 자리잡은 욕심이, 욕망이 그의 마음을 죄로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생명보다 귀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생명을 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나단은 이것은 은혜를 망각한 삶이라고 지적합니다. 다윗을 사울의 손에서 지키시고 그를 인도해 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처사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이 스스로 욕심을 냄으로 죄의 길로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부인한 처사입니다. 그의 부족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돌보고 계심을 망각한 것이기에 이 또한 죄임을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 속에도 이러한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이 돌보시는 것들에 대한 망각은 우리로 욕심을 가지게 하고, 그 욕심을 통해서 하나님께, 또 사람에게 범죄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죄의 결과
욕심이 낳은 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다윗 스스로가 고백한 것처럼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없는 자는 그 역시도 생명으로서 살아갈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귀하게 만들어 주셨다면 다른 사람의 생명 역시도 귀하게 만드셨음을 인정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것을 망각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가 창조자와 심판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는 작은 욕심이 자라면 죄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장성하면 우리를 사망으로 인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의 욕심으로 인해서 그의 가문에 죽음의 칼이 영원히 그치지 않는 심판의 삶이 주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돌보심에 늘 감사하는 마음이, 자족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 역시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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