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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으라

꿈지기의사랑 2006. 11. 23. 17:29

마가복음 13:32-37


하나님만이 아신다


   한 때 몇 월 며칠에 주님께서 재림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혼란에 빠뜨렸던 이단들(시한부종말론)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성령께서 자신들에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그 날에 이 땅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지나가고 수년이 흘렀음에도 이 땅에 종말은 아직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잘 못된 성경관이, 믿음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때론 많은 사람들이 그 일로 인해서 자살을 하게 하는 현상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군시절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싫어한다는데 그래도 짧았던 군시절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해남에 있는 해안 경계근무초소에서 군복무를 잠시 했었습니다. 그곳에서의 근무는 교대로 3시간정도씩 해안의 상황을 관찰하고 보고하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부둣가에 초소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배가 언제 어느 때 들어온다는 것을 알면 그 시간에만 확인하면 되겠지만 그것이 천차만별이고 배의 상황에 따라서 그 시간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늘 바다를 주시하고 부둣가를 주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라도 배를 놓치고 그 상황을 보고하지 못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특별히 잠이 쏟아지는 밤에는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아는 것은 오직 배 주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


   본문에 그날과 그시라고 나옵니다. 그날이라고 하는 것은 주의날, 즉 마지막 이 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주께서 재림하시는 그 시기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날짜와 시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배가 들어올 시간을 주인만이 아는 것처럼 이 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만 그 시간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한부 종말을 외치며 그 날에 대해서 떠들어 대고 우리를 미혹하려 합니다. 이것은 잘 못된 가르침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늘 안심하고 있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날은 잠시 늦어질 수는 있으나 분명히 우리에게 임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깨어있으라

 

   성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주의하라 깨어있으라”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그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정신을 놓고 살지 말라고 말합니다. 늘 주의하고 깨어 있으라고 말합니다. 먼저 주의하라(be on guard)고 말씀하십니다. 주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이렇습니다. 다른 자극들을 배제하고 어떤 현상에만 의식을 집중하는 것. 예를 들어 사람이 뜨개질과 같은 일을 배울 때 그 행위는 세심한 주의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솜씨가 익숙해지면 뜨개질을 하면서도 텔레비전을 보거나 대화를 나누는 등 다른 일도 쉽게 할 수 있으며, 실을 바꿔야 한다거나 실수를 저질렀을 때와 같이 특별한 상황이 일어나야만 비로소 그 사람의 주의는 다시 뜨개질하는 행위로 돌아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한다는 것은 세상의 다른 것들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잘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파수꾼이 성을 지키거나 농장을 지키면서 들짐승들이나 적군이 들어와서 해하려는 것들로부터 사람과 농작물을 지켜내는고 경고하는 것(조심시키는 것)처럼 우리의 역할이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깨어있으라(be alert) 말합니다. 자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는 잠을 잠으로서 피로를 풀고 새로운 힘을 얻어서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잠에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깨어 있음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경계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잘 살피고 신경 써서 일을 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파수대에서 파수꾼이 적이 오는 것을 살피고 보듯이 우리의 삶에 영적인 어두움들이 찾아오는지를 늘 살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방심한다’ 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의 그 틈을 타고 들어서 우리는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성서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자를 찾아다닌다고 말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사본에는 기도하라고 하는 말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을 향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왜 이 세 가지를 병행해 가면서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영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최대의 적인 사단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홀연히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가 언제일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근무를 서다보면 졸릴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병사들을 격려도 하고 병사들이 근무에 태만하지 않은지 상부에서 아무도 모르게 시찰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 만일 그 사람들에게 자는 모습이 보이거나 근무 태만의 자세들이 보이면 바로 그들을 징계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도 주인에게 자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주인이 홀연히, 갑작스레 아무도 모를 그 때에 왔을 때 잠자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면 그는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지기는 주인이 외출을 하면 주인이 올 때까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의 문을 열어주고 그의 발을 씻어주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 시간에 자리에 없거나 잠을 자고 있다면 주인은 화를 낼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우리의 삶의 자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태만하다면 그것은 문지기가 잠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도 때로 태만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게 놀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런 모습을 주님에게 보여드리면 안되겠습니다. 그날의 정확한 때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안개가 끼는 것, 노을이 지는 것과 같은 현상들을 보면서 구름의 모습을 보면서 바람의 형태를 보면서 비가 올지 오지 않을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날에 영적인 잠에 빠진 채로 주님을 만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적인 잠에 빠져서 주님께 밖에 나가서 이를 갈며 슬퍼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 언제 오실지는 모르나 날마다 깨어 기도하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영을 지키고 우리의 이웃의 영이 사단의 세력이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들을 세워주는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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