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신명기 4:25-40
1.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29절)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으면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고 교제하는 방법상의 문제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 인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할 때 어떠한 자세로 대해야 하는 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관심에 바탕을 둔 행동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무관심을 벗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그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고 얼굴을 내게로 향치 아니하며"(렘 32:33)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삶의 모든 영역안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구하는 자 였으며 그분을 그의 삶으로 초대하여서 생활하던 자입니다.
시편 63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1-3절)
이슬람 교도들은 하루에 5번 기도의 시간을 지키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자신의 메일을 확인합니다. 이처럼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찾고 갈망해야 합니다.
프랭크 바흐라는 문맹퇴치 운동 기구의 설립자는 하루의 시작부터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고, 다른 잡다한 생각과 산만한 마음은 과감히 떨쳐 버렸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그것은 의지의 행동이다. 나는 강제로 나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열리도록 복종시켰다. ......나의 관심을 그곳에 고정시켰다. 어떤 날은 그와 같은 정신 상태에 도달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에 불타기 위해 하나님을 갈망해야 한다. 영혼이 아직 이러한 갈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런 열망을 간절히 소망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상숭배와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이제는 등돌렸던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의 관심과 초점을 하나님을 향해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거저 이루어 지지 않는다. 믿음의 선배들의 말처럼 이것은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조금더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통해서 얻어진다. 신명기 기자는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
애타고 목마르게 찾기만 하면
" 그렇다. 어떤 개그맨의 말처럼 "그 까이꺼 대충"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자가 타들어가고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느끼는 이가 물을 찾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고통과 역경이 있더라도 그것을 꼭 얻겠다는 결단의 마음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심과 전력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보이시는 은혜를 허락하시겠다고 말씀한다.
2.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며 우상을 숭배할 것을 아시면서 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가나안에 이르게 하셨나요?(30-31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한 풍요한 삶 속에서 부패하고 병들 것을 아셨습니다.(25절) 당시의 가나안 지역은 우상이 많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방문화에 휩싸이기 쉬웠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서 으름장을 놓고 계시는 것이다. 그들의 삶에 넘지말아야할 마지막 한계선을 긋고 계시는 것이다. 나무, 돌을 가지고 사람이 만든 보지도, 듣지도 먹지도 냄새맡지도 못하는 인격적이지 못한 것들을 섬기는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그런다면 그들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가나안의 문화속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외면할 그들에게 하나님은 최후의 한계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꼭두각시 인형처럼 대하시지는 않는다. 우리의 의지를 통해 결단을 통해 살아가도록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의지가 잘 못된 방향으로 계속해서 흐를 때는 매를 들어 그들을 쳐서 돌이킬 수있는 기회를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쉽게 변하는 사랑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에서 떠나 방황할지라도 그들을 사랑하시는 것이다. 세상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필요하면 쓰고 필요없으면 버리는 이치를 상용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어서 버리지 않고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마치 우리를 멸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처럼 비춰지지만 결코 우리를 멸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끝까지 참으시고,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이것을 악용해서는 안되고, 오해서도 안된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으를 벗어난 자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심판은 삽시간에 우리를 없어지게 할 것이다.
또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은 그들이 명령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이삭과 야곱과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기에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
하나님은 심판이 아닌 은혜베푸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만나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우리의 삶은 방종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진리를 떠난 우리의 삶은 바르게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단 한분 하나님께 귀기울여야 한다. 그 말씀을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이 복을 누리며 사는 길이요.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40절)
3.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32, 36, 38절)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이시다. 광야의 삶속에서 가나안 정복전쟁속에서 이스라엘을 붙드신, 지키신 하나님이시다. 그들이 걸어온 인생의 역경 때마다 그들의 앞에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은혜베푸신 하나님이시다. 그들이 범죄하였을 때도 완전한 심판이 아니라 길이 참으시는 크신 사랑으로 안아 주신 분이시다. 우리의 삶을 계획하시고 이루신 분이시다. 우리는 그분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을 기억할 때 우리는 범죄치 않을 것이다. 우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32절) 또한 우리를 시험을 통해서 연단하시는 분이시다. 더욱 성숙한 신앙인,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되도록 우리를 연단하시는 분이시다. 이방신과는 다르게 그들을 죄악 가운데서 죽어가도록 버려두지 않으시고, 인도하여 시험을 통해 그들을 연단하시고, 바르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음성(말씀)을 통해서 길을 인도하시고, 붙드시고, 안심케 하신 하나님이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그들을 어두운 삶의 자리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이시다. 음성을 통해서 우리에 대한 구원의 뜻을 분명히 밝히신 분이시다. 그들을 강한 팔로 구원하여 주시고, 그들 앞에 놓인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신하나님이시다. 또한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 희망의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늘 만나는 삶이 되어져서 영원한 행복과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이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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