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1:1-4, 8-9(구약 1266/고전 1:26-31, 마 2:13-23)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토끼의 기민함과 영특함을 닮아 저와 여러분도 기민하여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토끼가 껑충 뛰어오르 듯 저와 여러분의 삶이 껑충 뛰어올라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주시는 새로운 소망의 약속을 붙들고 성령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새해 첫단후인 첫주일 예배를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의 한 해가 형통한 복과 은혜로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사랑으로 시작합시다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과이불개, 욕개미창(慾蓋彌彰)
2022년이 마무리 되고 새로운 해의 첫날을 맞이했습니다. 새해의 첫날이 주일이라는 것이 더욱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 말씀과 함께 새로운 해를 계획하고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은혜인 것 같습니다. 매년 전국의 교수들이 투표를 해서 한 해를 평가하는 문구를 내놓는데요, 2022년을 평가하는 글귀는 과이불개(過而不改)였습니다.
과이불개'는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의 '위공령편'에 처음 등장합니다.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즉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장)는 과이불개를 추천한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정형화된 언행을 이 말이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며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야당 탄압'이라고 말하고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박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니 그런 사례가 여럿 있었다"며 특히 성군으로 불린 세종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하며 이를 고치는 장면이 많이 등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세종의 반성과 대책 때문에) 세종 재위 기간 안전사고에 의한 대규모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잘못을 고치거나 처벌받기는커녕 인정하지도 않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진노해야 하나"고 말했습니다. 과이불개 이외에도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뜻의 '욕개미창'(慾蓋彌彰) (연합신문 12월 11자 기사 참고)
이 두 개의 사자성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덮으려 하지 말고 회개하고 돌이켜서 그것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특히 하나님을 믿는 교회 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줄로 이끄시는 하나님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숭배하던 때에 이스라엘을 책망하기 위해 세워진 선지자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잘 보여준 예언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꾸만 곁길로 나가고 우상숭배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하나님이 끝까지 이스라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오늘 본문 11장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절의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하는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시킨 사건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광야 40년을 지내는 동안 놀라운 기적을 베푸셔서 이스라엘을 보호해주시고 은혜를 베푸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며 바알을 섬기며 그에게 제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팔로 안아 지켜주셨습니다.(3절) 심지어는 잘못된 이스라엘을 고쳐주셨지만 그것마저도 이스라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그래도 버리지 못하시고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시며”(4절) 또 8절에서 보는 것처럼 애타게 이스라엘을 기다리며 사랑의 호소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하려고 ‘사랑의 줄’로 이끌어주셨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선지자를 보내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채 하나님을 떠나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계시고, 그들이 죄악 가운데 살아갈 때에 조차 그들을 사랑하여서 버리지 못하고,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반성하거나 회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울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이 답답하고 아프셨을까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런 못난 자식인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의 끈을 놓치 못하신다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4절) 하나님께 아픈 손가락이었던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이 말씀의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부르는 이름이고, 스보임이나 아드마는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 근처에 있는 지역들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해 주는 말씀입니다. 9절에서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라” 말씀하십니다. 인생과 같이 수시로 변하는 분이 아니라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은혜를 받고도 쉽게 변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하나님은 사랑의 눈으로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우리가 잘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고 우리는 수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엉뚱한 짓했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우리를 향해 “내가 어찌 너를 놓겠니, 내가 너를 버리겠니?”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고요! 이를 우리는 은혜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다른 말이 없습니다. 은혜입니다.
나가는 말 : 우리도 사랑으로 시작합시다
2022년 사랑하지 못했다면 이제 다시 주어진 새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새해에는 우리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불타는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은 독생하신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 아들을 통해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세상의 가치로 따지면 별 볼일 없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지혜, 의, 거룩함과 구원(대속의 사랑)이 되셨습니다. 절망으로 가득한 우리의 삶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 슬픔과 탄식과 눈물로 가득한 우리의 삶에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탄생 때 죽음으로부터 사랑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이 오늘 우리의 삶도 생명과 소망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그 사랑을 나누며 사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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