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1-20
들어가는 말
오늘은 성령강림둘째주일이면서 동시에 총회적으로는 총회선교주일로 지켜지게 됩니다. 우리 교단은 그동안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지향해 왔습니다. 선교는 단순히 교회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의 확장이며, 선교는 교회에 예속된 한 부분이 아니라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며, 선교는 하나님이 친히 교회를 통해 이 세상에 그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선교의 지향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우리의 삶 전 영역에 미치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계절에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네 가지 밭의 비유
본문인 마가복음 4장의 말씀은 보통의 기독교인들에게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2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방법중에 하나가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비유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들지 않으면 잘 깨닫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서 조금더 쉽게 하나님의 나라에게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시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비유들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씨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네가지 밭으로 비유하여 진리를 전하셨습니다. 그 밭의 첫째는 길가이며 그 둘째는 돌밭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가시덤불이 가득차 있는 밭이며 네 번째가 좋은 땅입니다. 농부는 이 네가지 땅에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길가에 뿌려진 씨는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마귀가 와서 그 말씀을 뺏어 갔습니다. 그래서 듣기는 들어도 그 말씀이 무엇인지도 므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어 듣기는 해도 전혀 그 말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그 마음이 돌밭 같아서 전혀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신앙 생활에 조그마한 어려움만 오더라도 그냥 신앙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핍박이 오면 바로 그 순간에 신앙을 초기해 버립니다. 세 번째는 가시덤불로 가득차 있는 밭처럼 마음 속에 있는 욕심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잡고 성장하는 일을 방해 합니다. 자라기는 하는데 제대로 자라지 못해 열매가 없습니다. 네 번째 밭은 좋은 땅입니다. 이 밭은 착하고 좋은 마음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고난을 참고 이김으로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입니다. 30배도 되고 60배도 되고 100배의 결실을 맺기도 합니다. 좋은 땅은 인내하는 마음이 있는 마음입니다. 그 말씀을 받아 들이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마음이요 오래 참는 마음입니다.
자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이 네가지 마음은 오늘 우리들의 마음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의 성장과정과도 같습니다. 어느 누가 처음부터 말씀이 바로 잘 들리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있는데 갑자가 신앙 생활을 잘 하도록 마귀가 가만 두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질 줄 알지만 때로는 신앙때문에 핍박이 올때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욕망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그 모든 순간들을 우리는 이겨 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인내함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께서 때가 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들이 많이 맺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의 가장 큰 축복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내 인생에서 주렁 주령 맺어지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항상 살 길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리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때가 될 때까지 인내함으로 좋은 열매들이 맺어지는 아름다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뿌려야 합니다.
선교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작은 씨앗을 뿌리는데 그 씨앗이 어떻게 자라고 성장하고, 영향력을 끼치게 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단지 우리의 기대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며 그곳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할 뿐인 것입니다. 기장의 선교사인 이옥희 선교사님이 인도에서 선교를 하고 계시는데요. 그분이 그곳에서의 선교 사역을 기록한 책 <선교사는 거지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곳에보면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한국의 중고 옷들이 많이 팔리는 추르찬드 루프를 방문했을 때 시장 골목길에서 어떤 촌로가 세종 대왕이 그려져 있는 1만원 지폐를 보여주며 혹시 우리나라 돈이 아니냐고 물어왔다. 시커먼 시골 노인이 우리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몹시 신기해서 돈의 출처를 물었더니 시작 통에서 구입한 헌 옷 속에서 나왔다고 답변했다. 그가 그 돈이 자기에게는 쓸모없는 것이라며 나에게 주어서 나는 그 돈을 루피로 환산해 드렸다. 당시 망고가 1킬로그램에 30루피였고, 감자가 10루피 정도였다. 그런데 그분은 무려 500루피를 받았으니 감격할 수밖에, 그리고 그 옆의 구경꾼들은 그의 횡재를 부러워했다" 선교사님은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헌 옷이 까마귀처럼 사람들을 돕고 있음을 보며 헌 옷을 내놓을 때 주머니의 돈을 빼내지 않는다. 나의 작은 것이 누군가에게로 가서 자비로운 하나님의 손길이 될 것이다."
우리는 복음의 씨앗을 뿌릴 뿐입니다. 그다음의 역사는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가십니다. 우리의 방식대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선교는 이루어져가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것들이 선교사님의 말처럼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말씀의 씨앗을 세상에 뿌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길가와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덤불에 싸인 밭과 같은 것이 곧 우리의 마음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육체의 소육은 성령을 거르스고...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엻마과 이단과 주기와 순취함과 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라디아서 517-21) 신명기서에서 말하고 있는ㅇ 것처럼 그 길은 저주의 길이 분명합니다. 사망의 길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은 그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열매맺지 못하고 변화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해야만 육체의 욕심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갈 5:16) 성령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만이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성령의 열매를 맺게되고, 복된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사역은 천국복음(말씀)을 온 땅에 두루 다니며 전파하시고,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 말씀으로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일이었습니다.(마4:23) 교회가 큰 건물을 짓고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가 온 땅에 가득하게 된다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 이방인의 땅에 전파되고, 말씀으로 교회가 제자들로 양육되고, 말씀으로 전인적인 치유가 일어나는 곳, 주의 말씀과 계명이 온 땅을 다스리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나가는 말
오늘은 우리 교단이 정한 선교 주일입니다. 선교는 생명에 집중해야 하고 생명을 향해야 합니다. 선교가 사람이 만든 어떤 이해관계를 통하게 되면 고난이나 어려움에 있는 생명이 또 다른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선교는 어떤 경계선에 있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복 받는 길은 모두 복덩이가 되어 생명이 생명을 낳는 역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장총회와 산하 교회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히 우리 용산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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