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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꿈지기의사랑 2021. 6. 20. 09:53

갈라디아서 3:23-29 (참고 요한복음 4:7-26, )

 

   오늘은 성령강림후넷째주일이면서 교단 총회가 지정한 6·25민족화해주일입니다. 70여 년 전인 1950년 6월 25일 벌어진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 민족 화해라는 평화의 날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우리는 오늘 이 주일을 민족화해주일로 지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여전히 전쟁과 같은 양상을 띠는 수많은 모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과 같은 남북 분단의 모습만을 통해서 보여지는 현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민족과 인종, 이념, 종교, 성별, 계층 간의 수많은 갈등과 다툼이 우리의 주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통일평화연구원 부교수인 김병로는 자신의 논문[화해는 어떻게 가능한가?]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한반도에 대전환을 가져올 듯 보였던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 선언, 역사적인 6.12 북미 싱가포르 선언이 1년 만에 다시 좌초할 위기에 놓였다. 남북의 지난 분단 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약속은 여러 번 있었다. 7.4남북공동성명(1972)과 남북기본합의서(1991), 6.15공동선언(2000), 10.4 선언(2007) 등 만남의 계기마다 화해와 협력을 다짐하며 평화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북한과 미국의 싱가포르 선언은 한국전쟁 이후 70여 년간 지속된 적대적 대립을 청산하고 새로운 관계수립을 천명한 그야말 로 역사적 화해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거듭되는 화해의 선언과 약속에서 불구하고 평화는 그다지 진전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는 '태극기모임'와 '촛불모임'의 예를 들면서 남북 이데올로기 분단의 갈등과 분열이 사회 내적으로 빚어낸 결과라 이야기 합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전쟁을 쉬고 있는 나라로서 여전히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벗어나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한 공동체로서 나아갈 길을 말씀 속에서 작은 힌트를 얻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한 헌장 : 갈라디아서

 

   본문은 바울이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한 헌장’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습니다.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의 자유에 대한 바울의 성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에 일부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 찾아와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율법과 할례의 노예로 바꾸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의 잘못된 율법의 행위로서의 복음을 반박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움의 우월성을 설명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은 먼저 믿음과 율법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합주의 경향을 보이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고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즉,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되었다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못 박아버립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 3:23-24)

   그러나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갈 3:25)”합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갈 3:26-27)”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이야기한 후에, 바울은 하나 됨을 선포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8-29)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손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죠? 하나님의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믿음 안에서 피부색이 다르다고, 나라가 다르다고,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분열합니다. 

 

요한복음의 수가성의 여인(사마리아 여인)이야기

 

   요한복음 4장에보면 민족간의 갈등을 겪는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수가성의 여인이야기 입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유대 지방에 체류하시다가 갈릴리 지방으로 가시던 도중, 사마리아 지방 수가 성을 지나가실 때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사마리아 지방의 한 여인과의 만남을 넘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하나인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여인간에 나오는 대화속의 남편은 당시 사마리아 지역을 통치했던 나라들을 상징합니다. 이전 다섯 나라는 앗수르와 바벨론, 페르시아와 알렉산더 제국입니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제국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5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이집트를 다스린 왕국)와 셀류커스 왕조(기원전 312년부터 기원전 63년까지 존속했던 서아시아 일대의 헬레니즘 계열 왕국) 그리고 현재의 남편이라는 것은 당시 통치자였던 로마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가나안 정복 전쟁에 함께 참여했던 이들입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뿌리 깊은 적대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는 사마리아가 기원전 721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자, 일부 주민들이 추방당하고 이방인들이 사마리아 땅에 들어와 살게 됩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혼혈족이라는 이유로 배척합니다.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남유다 왕국과 북이스라엘 왕국의 골 깊은 반목과 갈등이 근본적인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죽은 뒤, 통일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었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따라서 남 유다 사람들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좋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분파주의자라고 여긴 것입니다. 세번째 이유는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돕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원전 400년경 사마리아 사람들은 북이스라엘의 그리심 산에 유대인들과 경쟁하여 성전을 짓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북이스라엘은 산당중심으로, 그리고 남유다는 성전과 예배를 중심으로하는 다윗왕 계열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갈등해온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남북 분단 이후 북한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과와 북이스라엘에 속한 사마리아인들은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예배에 관한 대화속에서 예루살렘이나 그리심 산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넘어섭니다. 또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라는 민족성도 넘어섭니다. 오직 영과 진리, 곧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예배, 우리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모하는 심령(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또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진리)대로 살아가고자 다짐하는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것이 참된 예배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사마리아인과 유대인들 사이의 관계의 골을 넘어선 진정한 화해의 길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김병로는 "용서는 화해의 마지막 관문이다. 화해한다는 것은 과거의 폭력으로 발생한 파괴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행위이다. 파괴와 상처가 치유되 지 않고 그 잘못을 행한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정도로 끝난다면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그 결과의 희생자로 머물로 말 것 이다. 화해한다는 것은 이미 일어난 피해와 상처를 용서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신념이 변화되어야 하고, 상대에 대한 부정적감정과 태도가 해소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민족화해주일입니다. 화해를 위해서는 서로 간의 적대적인 감정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이 남한을 ‘혁명 대상’으로 명시한 조선노동당 규약 속 ‘북 주도 혁명 통일론’ 관련 문구를 지난 2021년 1월 당대회에서 삭제한 사실이 뒤늦게 소개되었습니다.(한겨레 6월 1일자) 북한이 북한 주도 남조선 해방 기조에서 벗어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노동당 규약을 바꾸거나 삭제한 것입니다. 북한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함께 변해야 합니다. 오늘 민족화해주일이 그 변화의 기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이러한 남과 북의 변화,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곧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이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민족과 인종, 성별과 국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또한 이 땅에 이러한 사랑과 화해의 영을 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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