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기도하라 - 우리가 홀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남모르게 기도해야 할때가 있습니다. 밤에 기도해야 할때, 새벽에 기도해야 할때가 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역 앞에서서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성령받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기적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연약한 성도들이 힘을 합해 기도할 때 사탄은 떠날 것이고, 악한 세력들은 떠날 것이며,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능히 감당할 능력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왜 기도에 실패하나? 나쁜 일을 해서? 노력을 안 해서? 아닙니다. 우리가 실패하고 무너지는 결정적인 요인은 시험에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작은 잘하고,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시험에 들면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는 것도 복입니다.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마귀는 인간적인 이유, 세속적인 이유, 신앙적인 이유와 같이 여러가지 이유를 만들어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올무에 잡아넣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잘 시작했던 것을 그릇되게 마치도록 만듭니다. 시험은 큰 사건이 아니라 시시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에서 올 때가 많습니다. 시험에 들면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귀가 막히고, 눈이 덮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애통하는 기도입니다. 통곡하고 고뇌하는 기도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러한 고통과 고뇌와 슬픔의 기도를 하셔야만 했을까요?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릴 만큼 능력이 있으셨고, 죄가 없으셔습니다. 예수님은 고뇌할 필요가 없었고, 슬퍼할 필요가 없었던 분이십니다. 그러나 고민하여 죽게 될 정도로 심각한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5:7을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한 사람이 치러야할 대가였던 것입니다.
생명을 건 기도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서서 기도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서서 손을 들고 성전을 향해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서서 기도할 만큼 그렇게 마음이 한가롭지 않으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바위 위에 손을 올려놓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의 성화를 본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선지자로부터 죽을 것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이때 자기 얼굴을 벽을 향하고 기도했습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에 비하면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낭만적이고 감상적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생과 사를 오가는 생명을 건 기도, 온 힘을 쥐어짜내면서 했던 기도입니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는 꼭 져야 할 십가가의 길을 결단하는 기도이기에 처절하게 기도한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기도, 자기를 깨는 기도, 자기를 포기하는 기도였기에 세번이나 기도하며 처절하게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꿈지기의 생각나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접과 사랑 (0) | 2020.11.17 |
---|---|
<용접에 관하여> (0) | 2020.10.15 |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되는 가정 (0) | 2012.05.26 |
행복을 향한 연합 (0) | 2011.05.14 |
죽음이 두려운 6가지 이유 (0) | 2011.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