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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에 거하라

꿈지기의사랑 2008. 4. 20. 14:11

요한복음 15:7-12


   오늘은 총회가 재정한 장애인(우)주일입니다. 우리가 형제로서 자매로서 기억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늘 소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장애우들에 대해서 그들을 기억하고 함께 가야하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그러한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억하는 귀한 시간이 되어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들도 우리와 동일하게 주의 안에 거하며 살아가는 존재요 우리도 그들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거하라


   주님은 우리에게 주의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우리는 이 말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간직한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후반절에 나온 것처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 안에 간직한다는 것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며,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곳,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됩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부합하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이 땅에 선포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구원 안에 거한다는 것을 말하며, 그분의 복음 안에 거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 복음의 핵심을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시각장애인)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누가복음 4:18)


   예수님은 이 땅에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자들을 그 장애로부터 해방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인생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땅에 이러한 사람들의 차별이 사라지게 하시기 위해서, 차별의 자리에, 소외의 자리에 서 있는 이들에게 자유함을 선포하고, 그들도 동등한 인생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할 사람들인 것을 우리에게 선포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장애를 가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장애를 가졌다고 그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는 아닙니다.

예화) 장애를 극복한 가린샤  

  가린샤 [축구선수 1933.10.28 - 1983.01.20]  브라질 축구영웅. 1962 칠레 월드컵 득점상. 불쌍한 새라는 이름의 뜻을 지닌 가린샤는 드리블의 명수로 아직도 그를 넘을 자는 없다고 한다. 가린샤는 그러나 6세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집안의 가난으로 병원에 갈 수 없어 이름없는 무명의 의사에게 무료시술을 받은 후 왼쪽다리가 3cm 짧아지는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그는 문맹이었다. 이러한 모든 어려움을 딛고 '환상의 드리블'로 두 차례 브라질을 월드컵 정상으로 이끄는 등 인간승리의 표상이 돼 브라질 국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애를 가지고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누구보다도 훌륭히 자신들의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이 자신의 장애로 인해서 기회가 박탈되는 경우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대부분은 사람들을 고치고 기적을 베푸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실체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을 가진 사람들인 것을 선포하고 있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보이신 것은 이적입니다. 그들이 병이낫고, 회복되고, 돌아서는 것은 이적(표적/sign)입니다. 이 말은 어떤 목적지를 향해서 가도록 보여주는 하나의 표시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구원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미래에만 있는 사건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 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보이시는 그리스도의 표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8)


    그렇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구원에서 먼 저주 받은 사람들이라 생각했고, 그들은 성전에 들어설 수도 하나님을 만날 자격도 없는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기회를, 이 땅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기회를 주시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맛보기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에는 누구도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입(口)니다. 장애를 가진 자나 가지지 않은 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동등한 권리가 있으며 이 땅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2008년도 4월 11일에는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장애”를 이유로 참여나 활동에서 배제하거나 소외시키는 직접적인 차별이 있습니다. 둘째,  건물, 교통, 각종 행사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에, 비장애인을 위주로 만들었고, 장애인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애인의 참가나 참여가 방해를 받거나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경우 일어나는 간접적인 차별이 있습니다. 셋째, 장애인이 참여함에 있어서 단순히 건물이나 교통의 이동권, 접근권 분야의 지원 뿐 아니라 수화, 점자,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 장애인들이 함께함에 있어서 적당한 편의제공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경험하게 되는 차별이 있습니다. 넷째, 폭력, 괴롭힘, 비하적인 언어사용, 따돌림이나 학대 등으로 이루어지는 차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실천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차별의 현상들을 타파하고 참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일구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 땅에서 사역하셨고, 공생애동안 이 땅에서 차별을 없애는 삶을 사셨다면, 그리스도의 제자된 교회는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도 사용하는 언어에서부터 기회를 주는 것, 또 그들을 주님께서 형제 자매로 얼싸안으시고 사랑하신 것 같이 주의 몸된 교회가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서 거듭나는 일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살아갈 기회를 주고 권리를 회복하셨으며 오늘 교회를 향해서 그 사명을 위임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2절)


   주님께서는 죄인된 우리를, 소외 속에, 고독속에 살아온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하시고 그 하나님 나라의 삶을 보여주신 것처럼 이제 교회도 우리도 그 하나님 나라의 안내자, 아니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가는 일꾼으로서 제자로서 장애우들에게 더욱 관심과 사랑 그리고 사랑을 나누는 귀한 사역을 위임받았음을 명심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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