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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랑

꿈지기의사랑 2004. 9. 30. 08:17

누가복음 15:11-32

 

   "추석 명절을 앞두고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두 살배기 아들을 3층 옥상에서 집어던져 중상을 입힌 비정의 아버지가 구속됐다.

   대전 동부경찰서는 29일 술에 취해 부부싸움 중 아들(2)이 겁에 질려 울자 아들을 3층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 8m 아래 바닥으로 던진 이모(41?대전시 용전동·용접공)씨를 검거,살인미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용접공으로 일용직 생활을 해왔으며,최근 불황으로 일거리가 없어 생활고로 자주 부부싸움을 해왔다. 이씨는 26일 0시20분쯤 술에 취해 돌아와 부인과 말다툼을 벌이던 중 아들이 놀라 울음을 터뜨리자 아들을 옥상으로 끌고 올라가 바닥으로 던졌다는 것이다."(국민일보)

    뉴스의 한 토막입니다. 자신의 삶이 어려워졌다고 자신의 아이를 홧김에 죽이는 세상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누가복음 15장의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측은히 여기는 마음(20)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 방황에서 돌아오는 아들 그것도 초라하고 초췌한 모습을 하고 신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죄인처럼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꼬를 열자나 빠뜨리고 오는 아들을 향해서 가졌던 마음은 바로 측은 한 마음이다. 맹자는 이 마음을 "사람에게는 차마 다른 이에게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즉 본 바탕이 선하여서 남을 해하지 못하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 사고를 당하면 아타까워하고 돕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원어로는 (스플랑크니조마이, 고통을 함께 나눈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도와 주지 않으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게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아들의 모습을 보니 내 살을 깍는 것 같은 아픔이 밀려와 그를 향해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 나이많은 사람이 달려간다는 것은 그의 사회적인 체면과 지위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러한 것들에 관심조차 둘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들의 그 아픔이 온 삶의 밀려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을 안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는 것은 화해와 용서를 의미하는 행동입니다. 입맞춤은 삼하  14:33(그래서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서, 이 일을 상세히 아뢰니, 왕이 압살롬을 불렀다. 압살롬이 왕에게 나아가서, 왕앞에서 얼굴이 땅에 닿도록 절을 하자, 왕이 압살롬에게 입을 맞추었다.)에  의하면 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서를 뜻한다.아버지는 그 아들의 잘못을 꾸짖기 보다는 오히려 그를 향한 깊은 사랑으로 그를 용서하고 그 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인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는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34 :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2. 좋은 것을 주신다.(22)

   아버지의 사랑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종들에게 명령하기를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22下-23上)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는데, 당시 사회에서 좋은 옷을 입힌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품꾼이 아니라 극빈처럼 더우하였는데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바로가  하사한 물품과  같은  것들이  지급되었습니다(창 41:42).제일 좋은 옷이란 문자적으로 그  집에 있는 첫번째의 옷이다. 제일 좋은 옷은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큰 영예를 의미합니다. 그 당시에는 훈장(勳章)이 없었을 시기였으므로 왕이 공로가 많은 신하를 포상할 때 귀중한 옷을 하사했다.따라서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혔다고 하는 것은 아들의 죄를 탕감해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가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공표하는 행위였습니다.

   가락지는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인장 반지와  같은  것으로서 이를 아들에게 주었다고 하는 것은 곧 자신의 권한을 아들에게 위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재산을 아들들에게 모두  이어준 아버지가 이제 가지고 있는 권한은  맏아들의 재산에 대한 사용권 뿐입니다. 따라서 첫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불만을  토로한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됨직합니다(29,30절). 엄밀한 이해타산으로 따지면 그의 아우는 이제 가산(家産)에 대한 아무런 권한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을 신는다고 하는 것은 그가 자유인의 권리를 회복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종들은 맨발로 다녔다. 먼 나라에 가서는 다른 사람의 머슴의 신세였던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와서는 다시 자유인으로서 살게  되었는데 이러한 모습은  사
람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반드시 죄에게 종노릇을 하게 되는 반면에  하나님  안에서는 완전한 자유자가 됨을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옷,  가락지, 신)는 필요성 때문에 제공된  것이라기  보다는 아들을 존귀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품군으로 일하기를 원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의 본래의 자리를 회복시키고 그와함께 음식을 나누며 사랑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가족사랑의 기초위에(32)

   형은 못마땅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그럴 수 가 있느냐고 따집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동생을 가리켜 말하기를 "아버지의 이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형은 가족이라는 여기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시의 몫을 모두 가져갔으니 나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형은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동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한번도 베풀어주지 않았던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에게도 불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십이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첫째 아들이 화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고, 가족이기에 함께 즐기고 기뻐하는 것은 마땅한 것 아니냐고 달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족이기에 한 혈육이기에 서로를 사랑하고 나누는 사랑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금더 가족의 영역을 넓혀 봅시다. 둘째 아들처럼 세상을 방황하며, 고난을 겪으며, 신음하는 우리의 이웃, 그들은 거리의 노숙자일수도 있고, 외국인 근로자일수도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일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여 돌아오는 이들, 우리를 향해 손 내미는 이들에게 오늘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의 손을 뻗어 봅시다. 측은히 여기고, 조금더 좋은 것으로 나누고, 그리고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인식속에서 말입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오!나의 아버지

나 그이를 좋아해요.
정말 잘 생겼잖아요.
나는 포르타 로싸에 가고 싶어요
반지를 사고 싶거든요
그래요, 그래요
그곳에 가고 싶어요
그이를 사랑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이라면
나는 폰테베키오에 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지겠어요
너무 그리워 애가 탈 지경이에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오 신이시여!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어요
아버지 저 불쌍하지 않으세요
아버지 저 불쌍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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