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간표(남신도회헌신예배)
베드로후서 3:8-14
하나님의 시간개념
베드로는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시간을 초월해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므로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때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재림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천년이든 하루든 그것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늦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약속에 대한 소망을 버린 사람들이 초대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인간의 지혜로써 하나님의 시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약속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말고 끝까지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화)하루살이에겐 내일이란 없는 것이다. 추수 끝난 텅 빈 벌판에 메뚜기와 친해진 개구리가 앙상한 가지만 남은 앞산을 바라보며 메뚜기에게 하는 말<겨울이 곧 올 거야, 우린 이제 헤어져야 해, 다음해가 오면 또 만나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메뚜기 <다음해가 정말 있는 거야?>라고 반문합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믿으려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은 이론으로 성립되는 것 아닙니다. 셀 수 있고 측량할 수 있는 것은 유한 하지만 무한한 것은 셀 수도 없고 측량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시작이 있는 모든 것은 끝이 있게 마련이지만 무한한 것은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하루살이가 내일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께서 영원에 관한 말을 들려주어도 우리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사람들은 주의 약속이 더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죄를 지으며 살아도 괜찮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초대교회는 주님의 재림이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질 것으로 여기고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베드로는 하나님을 변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주님의 재림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변개하시거나 허풍을 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때는 더딘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때(카이로스)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멸망의 시간, 주의 재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9절)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한 아니 전 인류가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갈망하시는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뜻이 담긴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생각대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이 빨리 왔더라면 여기에 계시는 여러분이나 저나 모두 구원받는 것이 어려웠던 사람들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의 약속이 사라진 것이거나 거짓말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 주님으로 하여금 참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로마서 2:4)
우리가 할 일은 주의 재림이 늦어진다고 불평 불만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부지런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그 사명을 주셨고, 특별히 남신도회가 이러한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위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디도서 2:11)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라
우리는 매일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깨어있어서 기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의 날이 도적과 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날에는 우리의 모든 삶의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매일의 삶에서 재림에 대한 소망을 잃지말고 현재의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늘 죄에 대해서 민감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신앙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후 7:1)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라는 것을 기다리게 됩니다. 경건치 않은자들, 불신자들에게 그날은 두려운 날입니다. 심판의 날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날은 심판이 아니라 주님의 구원이 성취되어지는 날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지금까지의 고통과 근심의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왕노릇하며 기쁨가운데 살아가는 나라에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을 사모하라는 것은 늘 준비되어진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의 면류관)는 그 나라를 사모하는 나라가 차지하게 되어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8)
사랑하는 남신도 여러분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우리 안에 불의한 죄악이 자리 잡지 않도록 늘 깨어있는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날에 이르기까지 주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서 점과 흠이 없는 인생으로 인정받아 그 날에 기쁨으로 참예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고, 주님이 주신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남신도가 되시기를 다시한번 결단하는 이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빌립보서 2:15, 공동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