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요단을 건너라
여호수아 1:1-9
부르심과
사명
본문의 말씀이 나오고 있는 배경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은 모세가
요단강 근처까지 그들을 인도하였지만 모세는 자신의 사명을 다 완수하지 못하고 모압 평지에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자신이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시종인 여호수아에게 자신의 일을 맡기게 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백성을 인도하는 바턴을 그의
시종인 여호수아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 바턴을 물려받은 후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곁으로 가게 됩니다. 본문의 첫 시작이 바로
그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시종 모세가 죽은 후에.."(1절) 그들을 인도하던 영적. 육적인 지도자인 모세가 죽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주 커다란 충격입니다. 마치 그들이 나침반을 잃고 표류하는 배와 같이 어디로 갈 지를 몰라서 주저앉은 사람의 모양으로 넋을 놓고
있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절망과 좌절감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안개를 만난 듯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잃자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잃은 것과 같은 공허감이 그들을 지배했습니다. 심각한 상실감으로 인해서 집단
우울증과 같은 증상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부르십니다. "여호수아야, 나의 종 모세가 죽었구나 이제 네가 그를 이어서 이
민족을 이끌어야 겠다" 말씀하시는 겁니다. 낙담한 그들을 일으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여호수아(하나님은 구원이시다)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2절의 말씀입니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떠나,공동번역)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들을 일으키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여호수아를 부르셨습니다. 그는 모세의 시종이었습니다. 시종이란 하인이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종교적, 공식적인
임무 대행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는 모세의 곁에서 모세를 수행하면서 믿음에 대해서, 용기에 대해서, 순종하는 법에 대해서, 하나님의
율법에 헌신하는 연습을 통해서 자신의 자질을 키워 온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여호수아를 통해서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먼저는 그들과 함께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절망의 상황 속에 머물러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절망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 시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상황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예화) 한 노인이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만치 앞에서 어떤 젊은이가 땅에
주저 앉아 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인이 다가가서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젊은이는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좌절을 빛을 띠며,
언덕 위에 꽃혀 있는 팻말을 가리켰습니다. ‘이 언덕에서 넘어진 사람은 3년밖에 못 살 것이다.’노인은 그제서야 이 청년이 슬퍼하는 사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팻말의 내용은 청년에게 청천벽력이었던 것이죠. 젊은이는 노인을 보며 더욱 좌절감에 복받쳐 울었댔습니다. 그 때 노인에게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안심하라는 듯이 젊은이를 다래며 말합니다. “여보게, 젊은이, 그렇게 울지만 말게, 내가 보니 울 일이 아닐세. 저
팻말대로라면, 오히려 기뻐하라구, 한 번 넘어져서 3년밖에 못 산단 말이지? 그럼, 세 번 넘어지면 9년을 더 살 것이요, 1000번을 이
언덕에서 굴러보게 얼마를 살게 되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노인이 젊은이에게 한
말과 같이 우리에게 좌절에 머물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일어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불확실한 미래처럼 확실히
보이지는 않지만 요단을 건너라고 말합니다. 육적인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서 펼쳐질 요단 건너의 땅을 향해서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아직 이 절망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지는 않습니까?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절망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스라엘과 여호수아를 향해서 함께
일어나 요단을 건너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명과 더불어 그들에게 약속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약속은 3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너희에게 그 땅을 준다는 것입니다. 범람하는 강인 요단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길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은 먼저 너희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자고 가나안을 향하는 일을 착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곳을 목표하며 떠나는 삶을 말씀하십니다. 요단을 건널 길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믿음을 통해서 그 명령을 준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2절) 하나님은 과거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대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행하셨던 일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3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서라고 말씀하시면서 약속도 함께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그들에게 주실 땅의 경계까지 정해 주십니다. 남으로는 아라비아 사막과 경계하고 북으로는 레바논 산맥에 이르며 동서로는 유브라데 강에서 지중해
연안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땅을 그들에게 허락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여호수아에게 요단을
건너도록 명령하십니다. 이 언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취되었습니다.(왕상 4:21 “솔로몬이 하수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그 나라들이 공을 바쳐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섬겼더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약속을 주십니다. 그들과 동행하시며 떠나지 아니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하나님과의 동행으로
여호수아는 당할 자가 없는 강력함을 얻게 됩니다. 즉 그 앞에 서서 그의 삶을 가로막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펼쳐질 가나안의
거인족들과의 싸움에서 함께 하실 뿐 아니라 능히 그들이 여호수아를 이길 수 없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셨습니다. 모세와 함께 하였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옆에서 광야의 40년 세월 동안 모세를 통해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목도하여왔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앞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앞에도 수많은 어려움이
우리는 넘어 뜨리기 위해서 기다리며, 절망과 좌절이 우리의 발목을 붙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두렵지 않은 것은 매순간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능히 이길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말씀을 따라 담대히
행하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향하여 말씀의 길을 따라서 행하라고 명려하십니다. 말씀으로부터 방향을 돌이켜 가지 말고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것들에 한 눈 팔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우리의 삶을 살아갈 것을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8-9)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우리는 그 말씀을 떠나지 않게 되고, 늘 그 가르침을 명심하며 살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마음과 뜻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어야 합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신 11:18)
성심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기에 우리가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온마음을 다해서 온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하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절망의 자리에서 함께 손잡고 일어나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가 나아갈 때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앞서 행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뒤를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현재의 절망의 자리를 바라보지 말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소망을 바라보며 천국을 소망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싸움을 주님의 뒤를 따라서 싸울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의 말씀의 길을 따라 일어나 인생의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 축복의 땅(하나님의 나라)으로 입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