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요한일서 4:7-12
사랑의 근거-하나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지혜가 너무나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속성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요한 일서 기자도 하나님을 가리켜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랑의 근본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가운데서 거듭난 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거듭난자)들입니다. 우리는 사랑함으로써만 이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색과 명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실천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선 사랑해야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8절)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즉 보여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증거되어졌습니다. 그 사랑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가장 아끼는 것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봄으로써 사랑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웁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범죄하고 합당치 못하는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은 아낌없이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예화) 화창한 어느 날 버스 한대가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버스 안에는 운전기사와 승객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참을 달리던 운전기사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달리고 있는데 내리막 길에서 한 아이가 도로를 건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피하면 승객이 모두 죽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가까이서 본 운전기사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들이받고 가까스로 버스를 세웠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무사했지만 아이는 그만 죽었고, 버스기사는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아이는 바로 이 버스 기사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승객들을 살리기 위해서 아이를 죽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죄없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 것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10절)
서로 사랑함이 마땅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서 그의 사랑하는 자를 주신 그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랑이 아니었으면 사랑에 대해서 알 수 조차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미움과 타툼 속에서 살아가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면 우리는 구원의 백성, 사랑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우리라면 이제 우리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과 연합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라면 마땅히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형제를 자매를 사랑하게 만듭니다. 만일 이러한 삶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우리가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뒤짚어서 생각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형제를 바라보고, 그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로 사랑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이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온전한 사랑을 배우며, 온전한 신앙인으로 성숙해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는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을 실천할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 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