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얻는 자의 복
잠언 3:13-24
잠언서 기자는 13절을 시작하면서부터 지혜에 대해서 예찬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지혜를 얻으면 행복하다(복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갈구하는 것이 행복일 터인데 그 행복으로 가는 인도자가 누구인가? 지혜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를 통해서 우리는 행복을 발견하고 그 행복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또 그 지혜를 얻으면 은을 얻는 것보다 나의며 정금을 얻는 것과 같은 이익이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지혜의 귀중함에 대해서 예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주보다 귀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사모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지고 귀하다고 예찬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품의 장점을 선전하는 것과 같은 표현으로 그는 선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지혜에 대해서 노래를 지어서 예찬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혜를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지혜를 지닌 자의 복
지혜는 어떻습니까? 지혜는 그 손에 장수의 축복을 쥐었을 뿐 아니라 다른 한 손에는 부귀의 축복을 쥐고 있습니다. 지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즐거운 길로 안내합니다. 지혜의 첩경은 평안 이라고 말합니다. 첩경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말하는데, 그 삶에는 고난과 역경이 있지만 주님이 주시는 지혜가 함께 하기에 그 길은 평안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기에 더 이상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자신을 붙드는 자에게 생명을 제공하는 나무가 된다고 노래합니다. 생명의 나무는 건강과 장수를 가리키는 전통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가진 자에게 그것 자체가 그의 삶의 건강과 영원한 생명을 허락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간직하는 것이기에 지혜를 갖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나무가 됩니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잠 11:30)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 (잠 13:1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상실한 인간은 어땠습니까? 사단의 권세 아래서 굴복하며 살았습니다. 죄의 종으로서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이 아니라 죄된 삶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를 회복한다면 그것은 생명을 얻는 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한일서 5:20)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얻을 때 비로소 우리는 참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영생입니다. 그렇기에 지혜를 얻는 다는 것은 복됩니다. 그렇기에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가 됩니다. 그 생명나무를 소유하시는 여러분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지혜를 추구하는 삶의 복을 노래한 본문은 19-20절에서 지혜가 단순한 세상적 가르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활동에 가담했던 하나의 창조적 힘이 되며, 또한 그분의 속성과 연관되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시고 공의와 사랑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이 그것을 또한 자신의 지혜로움을 가지고 이끄시며 그의 백성들의 지혜로운 삶을 통해서도 이 일을 계속 진행시키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앞에서는 마치 아이를 달래듯 그 아이가 해야 할 것이 정말 좋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어머니처럼 잠언서 기자는 지혜의 뛰어남에 대해서 설명하고 또 가르칩니다. 그리곤 주님이 누구신지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잠언서에서 주님은 누구십니까? 천지의 창조자이십니다.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주님은 지혜와 명철로 하늘과 땅을 지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잠언 8:22-23)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 이전에 이 지혜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혜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주님은 지혜로 하늘과 땅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지혜'없이는 우주의 신비를 알지 못하며, 인생의 진리를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함 없이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만사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날뛰기 때문에 사람은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당하게 됩니다.
지키십시오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각종 계율이 어느 곳에나 존재합니다. 그 계율들은 사회와 조직들을 조금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켜질 때 그 의미를 가집니다. 잠언서 기자는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근신이라는 말은 '목적하다, 고안하다, 고려하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왔는데 이말은 타인의 속임수에 미혹되지 않는 사려 깊음 또는 신중함을 뜻합니다. 완전한 지혜는 사리의 시비와 가부를 바르게 판단함을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지키고 눈앞에서 떠나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지혜와 근신'을 지킨다는 말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성도들의 눈 앞에서 항상 하나님이 보이는 듯이 늘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말씀에서 빗나가지 않도록 주의 하며 순종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망각의 존재입니다. 자꾸 잊어버립니다. 그렇기에 수시로 점검하고 살피고 다짐하지 않으면 잊게 되고 영원히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도 그런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 소중해서 그것을 잘 두어야겠다고 두었는데, 그것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한참을 찾거나 영영 잃어버리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그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도 하나님을 아는 지혜도 늘 그것을 눈 앞에 두고 지키고, 살피지 않으면 곳 잊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신명기 기자는 말합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속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 4:9)
거울 앞에서 자신의 용모를 살피는 것처럼,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삶을 놓고 늘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피고, 주님의 말씀을 떠나 살지는 않는지 우리의 삶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영혼의 생명이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근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혜가 영원한 생명이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지키는 자에게 지혜는 그가 곤고하고 상하며 영혼이 지쳐 쓰러졌을 때 그를 일으키고 생기를 불어넣어줍니다. 지혜를 구하여 날마다 그 지혜를 통해서 삶의 원칙과 지표를 삼는 사람은 날마다 영혼의 새 힘을 경험합니다.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잠 4:22)
지혜를 지키는 삶을 살 때 우리는 길을 안연히 행하게 됩니다. 안연히 행한다는 말은 안전하게, 염려없이 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확실한 믿음 가운데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는 평안함과 안전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길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하게 됩니다. 또한 발이 거치지 않는다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은자에게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기에 그의 발이 거치지 않고 평탄게 됩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삶이기에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과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눕고 잠을 잔다는 것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 힘쓰시고 그 지혜를 지킴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사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