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 않는 불꽃떨기 속의 하나님
본문 : 출 3:1-8(구약, 84면)
연약한 자가 된 모세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게 되는 극적인 장면에 관한 내용입니다. 혈기왕성한 모세는 동포들이 이집트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어 사람들이 안 보는 틈을 타서 이집트 관리를 때려죽이고 땅에 묻습니다. 다음날, 이번에는 같은 히브리 동포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끓어오르는 연민과 격정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왜 동포끼리 싸우느냐'고 타일러 보지만 히브리인들의 반응은 냉답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모세에게 달려들 듯한 태도를 보이며 '어제는 이집트인을 죽이더니 오늘은 히브리인을 죽일 참이냐!'며 말합니다. 동포를 향한 연민은 냉소로 돌아왔고, 바로 황제로부터 살인자로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모세는 지금 장인의 양을 치는 양치기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고위 관직에 있어야 할 그의 현재의 모습은 양치기입니다. 애굽적인 사고로 한다면 그는 최고위층에 있어야 할 사람이 최하층민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그를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나온 모세는 좌절과 체념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11절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겠습니까? 인생의 패배자로 살아가는 그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좌절된 인생, 희망없는 인생이 바로 그의 모습입니다. 인생의 최대의 절정기라고 불릴 수 있는 시기에 그는 양을 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기력을 상실한체, 희망을 상실한체 살아가는 인생의 대변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상실한체 살아가는 그의 인생을 우리는 만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인생 중에서도 혹 나의 잘함이나, 자랑을 하려다가 실패한 적은 없습니까? 또 자신의 혈기를 통해서 실패한 적은 없습니까? 인생의 좌절과 실망과 패배감 속에서 살아가지는 않으십니까? 최대의 인생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바로 모세가 그러한 모습으로 광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떨기나무에서 만난 하나님
그러던 어느 날, 양을 치던 모세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떨기나무에서 불길이 솟아올라 떨기나무가 불타는데도 소멸되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가 있던 광야에서는 건조하기 때문에 갑작스런 화재가 발생하는 일들을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이 나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불길만은 이상했습니다. 모세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어 섰습니다. '이상하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면 재가 되어 바람에 사라져야 할텐데, 저 나무는 왜 불길만 있고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2절) 모세는 궁금하여 가까이 접근합니다. 몸을 돌이켜서 그가 그 곳으로 가까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모세 귀에 "모세야 모세야...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이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출 3:5)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모세는 하나님이신 것을 직감적으로 인지하고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 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는 두려움과 죄인인 자신이 하나님을 뵈었기에 죽었구나 하는 심정으로 떨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모세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그들의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역사하시고 그들의 삶을 인도해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들의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모세가 겪은 놀라운 사건은, 눌림 받고 고통당하고 억울하게 살아가는 자의 '탄식 소리'에 응답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원래 사막에서 떨기나무는 일년생 풀입니다. 아침 이슬을 먹고 자라기는 하지만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여름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이 내려쪼이면 저절로 발화되어 순식간에 타서 소멸되어 버리는 풀입니다. 알고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세가 그러합니다. 그들은 태양신으로
숭배받는 바로 밑에서 연명하는 노예였습니다. 태양 볕에 노출된 가시떨기에 불과한 존재들입니다. 노예들이 태양신인 바로를 거스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들 힘으로 일어선다는 것 역시 상사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탄식'하며 '신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7절의 말씀은 그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내가 애굽에 잇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위의 말씀으로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의 폭정 아래에서 견딜 수 없는 중노동과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권을 박탈당한 체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마치 광야의 떨기나무와 같이 연약하고 볼품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누구하나 눈여겨보지 않을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모습은 모세는 자신의 모습만을 바라보느라, 좌절하고 신음하느라 정작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지 못 했습니다. 그 모습 역시 떨기나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조상들의 고난과 좌절감속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으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나신 겁니다. 그 하나님은 과거에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떨기나무와 같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죄의 속박속에서, 인생의 문제의 곤고 속에서 신음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우리 속으로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처럼 연약한 들풀이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데도 가시떨기는 타서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징조일까요? 불꽃 가운데서 소멸되어 버릴 것 같은 연약한 백성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불길과 같은 폭정아래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광야의 타는 듯한 태양 아래서 신음하는 모세, 하나님은 난 쓸모없고, 도울 자가 없다고 여기며 눈물짓는 우리의 눈물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고통 저편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 속에서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해 "내가 너를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실패와 좌절을 겪은 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로 여기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해보겠다고 나섰을 때 돌아온 것은 좌절뿐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비로소 하나님께 의지하여 일어섭니다.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도 하나님께서는 말씀가운데서 당신의 뜻을 전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시대가 어둡고, 내 삶이 비참하다 해서 하나님께서 '부재중'이신 게 아닙니다. 내 심령이 척박하여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생애에서, 타지 않는 불꽃떨기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연약할 때, 참혹할 때, 절망적일 때, 온갖 스트레스로 인해 숨이 막힐 때, 그래서 이글거리는 불꽃 가운데서 소멸되어 버릴 것 같은 곳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살게 하여 주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세는 그것을 발견하고 깨달은 사람입니다. 타지 않는 떨기나무의 불길 속에서 그를 부르시는 그 광경을 보면서 모세는 하나님의 동행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억압과 강탈과 죽음이 지배하는 땅 애굽, 그 땅속에서 살아가던 이스라엘, 죄와 사망의 권세에 눌려 신음하는 바로 우리들, 연약한 떨기 나무 속에서 오늘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시련의 불길에 휩싸인 인생들을 향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 삶의 현장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오늘도 함께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불기에 휩싸인 떨기를 지키심 같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죄의 도시 애굽을 향해서 모세를 보내신 것처럼 오늘 시련의 땅, 고난의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길을 얻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역사 속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그 하나님을 기억하시며, 믿음 가운데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2절)